신혼부부가 된 우리의 첫 페이지는 기숙사를 떠나면서부터 쓰인다. 4년 넘게 살다 보니 정도 들었지만, 속으로는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한정된 공간, 매일 들리는 옆방의 소음, 그리고 메뉴 선택권이 없는 기숙사 식당, 룸메이트에 대한 배려와 기다림… 때로는 지겨웠다.
내 탈출구는 꽤 멋진 곳이었다. 시부모님의 재력 덕분에, 강남의 한 아파트로 입주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거대한 대리석 바닥이다. 그 돌은 완벽한 광택을 자랑하며, 햇빛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올 때마다 부드럽게 반사되었다. 발이 닿는 감촉조차 시원하고 매끄러웠으며, 마치 어느 유럽의 고풍스러운 궁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디자인을 갖춘 조명은 공간을 밝히면서도 은은한 금빛 빛깔을 띠었고, 벽면의 고급스러운 질감은 손끝으로 스치기만 해도 그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거실의 통유리는 바깥 풍경을 완벽하게 담아내며 한강의 전경을 한눈에 담았다. 높다란 빌딩들이 멀리까지 이어졌고, 도시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가 보일 때면, 나에게 ‘세상 중심에 서 있다’라는 느낌을 주었다.
주방은 한마디로 미래를 연상케 했다. 흰색 대리석 조리대와 첨단 가전제품들이 줄지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것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이곳은 과학기술의 집합체라고 보면 된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세라믹 타일로 꾸며진 주방 벽면은 세련된 광택을 띠었고, 작은 소리조차도 흡수할 만큼 조용했다. 향긋한 나무 냄새가 풍기는 방들은 모던하면서도 아늑했고, 침실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
이 아파트는 주거공간을 넘어선 삶의 품격을 나타내는 곳이었다. 모든 디테일 하나하나가 철저하게 계산된 듯했고, 허풍을 떨자면 공기조차도 세련된 것 같았다. ‘좋은 집에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사실, 이 또한 확률 계산 속에 들어 있던 부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여우 같은 계집애"라며 눈을 흘길지도 모르지만 뭐 어쩌겠나, 잘 먹고 잘살고 싶은 본능은 원래 인간의 기본 장착 옵션 아닌가? 그게 죄는 아니잖아! 너무 뭐라 안 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현실적인 여자’랑 ‘얄미운 여우’는 종이 한 장 차이니까.
오늘도 강남 한복판에 있는 대리석 궁전에서 커피를 마신다. 이처럼, 재동이네는 재력이 상당한 집안이었다. 데이트할 때마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모든 비용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기도 하고, 그가 타고 다니던 차, 일상적인 식사조차 호텔 뷔페에서 해결했으니 말이다. 그의 가족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생활 방식에서 느껴지는 느긋함과 여유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다고 뭐, 우리 집도 못 살지는 않았다. 핀란드에서는 나름 중상층에 속했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시부모 집안은 한 차원 더 높다고 해야 할까. 한국사 교양수업에서 배웠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현대판 지방호족인가?’라고 생각해보지만, 서울에서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간 집안이니, 그 호칭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새로운 세계는 내가 이전에 알던 세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
한편, 기숙사에서 벗어났지만, 학교의 중력은 여전히 나를 잡아당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발목을 단단히 묶어두고 있는 것처럼, 매일 같은 경로로 그 실을 따라갔다. 4년이라는 대장정 내내 같이 어울렸던 보라는 안정된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안전제일"을 외치며 정부가 발주하는구조물 하나하나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하는 대기업 시공사의 일원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면접장과 스터디룸을 오가며 자신을 단련 중이다. 그 에너지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크레인처럼 묵묵하면서도 무겁다.
판승은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LH) 타이틀을 달고 도시개발사업에 대해 배우고 있지만, 어디로 항해 중인지 모르는 배처럼 인턴십의 물살을 가르고 있다.
늘 자유로운 영혼인 엘레나는 졸업 후,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작가의 길을 택해, 미국과 한국을 쏘다니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난 교량 대신 세상을 짓고 싶어." 그녀의 말이 귓가에 잠시 맴돈다.
친구들을 생각하다 보니, 연구실로 금방 들어설 수 있었다. 석박사 과정을 밟는 이곳은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우리 연구실은 나 포함해서 4명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각각 다른 프로젝트를 맡았기에 크게 교류할 일은 없었다. 점심만 같이 먹는 정도?
실험실의 한쪽에서는 물이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며 투명한 유리관을 따라 흘렀고, 그 흐름을 관찰하며 계산 값을 검토했다. 유속, 점성, 흐름의 패턴 하나하나가 계산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는데, 옆에서 김연수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레나, 속도 프로파일과 경계층을 비교하는 게 왜 중요한지 알겠니?" 교수님은 당연한 사실을 묻듯이 차분히 말을 건넸다. 그는 언제나 질문으로 시작했다. 답을 주기보다는 생각하게 했다. 하물며,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내는 일이 늘 일상이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벽에 걸린 유체의 흐름 그래프를 가리켰다. "네, 교수님. 경계층에서의 속도 변화가 전체 유동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님은 미소 한번 없이 간단히 끄덕였다. 그가 옳다고 말해주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물리 법칙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고 넘어가길 바라는 듯이, 그는 항상 그 자리에서 논리적이고 확실한 설명을 요구했다.
“실험은 이론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알아내는 것일세. 오늘의 결과가 만족스럽더라도, 다른 조건에서 어떻게 변할지를 예상하는 것이 중요하네.” 교수님의 실험 지도는 언제나 차분했고, 학생들이 실수할 때도 큰 소리 내지 않았다.
"저기에서부터 흐름이 왜 이렇게 뒤틀렸지? 실험 조건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계산에서 빠진 변수가 있나?" 그는 실험에서 얻어낸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하며 내가 놓친 부분을 지적하곤 했다.
대학원생들에게만 열리는 수업을 들을 때면, 교수님은 귀에 펜을 꽂고 칠판 앞에 서서 복잡한 유체역학 공식을 설명했다. 유속, 압력 분포, 에너지 방정식까지 그의 필기는 정교하고 명확했다. 가끔은 그 논리적인 세계에 함께 속해 있기를 강요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나는 학교와 집을 오가는 일상에 빠져들었다. 재동이도 학사과정이 끝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자연스레 석박사 과정으로 발을 들였다. "시공사에 가면 주말부부로 지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매일같이 출장을 다니거나 현장에 머물러야 할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설계 회사는 글쎄…. 야근에 찌들어 사는 건 내 성격에 안 맞아."
하지만, 수리·수문학을 전공하는 나와는 다르게, 흙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는 토질역학 쪽에 더 흥미를 느꼈고, 지도교수님인 안상국 교수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물을 연구하는 반면, 그는 흙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우리 둘의 연구는 대조적이면서도 연결된 부분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우리가 마주칠 일은 흔치 않았다. 그의 연구실은 층수만 다를 뿐, 그리 멀지 않았지만 둘 다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각자의 논문과 실험, 그리고 연구 프로젝트가 우리를 연구실에 붙들어 두었다. 그래서일까, 집에 돌아와 마주 앉았을 때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오늘 실험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어"라는 말로 서로의 하루를 풀어놓곤 했다. "안 교수님이 오늘 강의를 하다가 그랬어. 흙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그 안에 수백만 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말하자면, 그 하나하나가 작은 타임캡슐인 셈이지." 재동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흙에 이렇게 몰두하는 거야? 역사적 감각이 있다고?"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물에 빠졌잖아. 흙이나 물이나 결국, 우리가 연구하는 건 자연의 일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