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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Oct 03. 2024

제4화 진화의 시작

‘기록’하다(2)

 김 교수님에게 흐름의 법칙을 배우던 어느 날, 물이 자유롭게 흐른다는 말이 이상했다. 물은 그 자체로 자유롭지 않은가? 눈앞의 수식을 따라가다 보면, 물은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에 얽매여 있었다. 속도, 유량, 압력—all 그것이 수치로 환원되고, 공식 속에 갇혀버린 물은 흐름을 잃는다.

 강물은 한없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흐를 때조차 제약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꿈속에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무언가에 가로막히는 것처럼, 물도 자유를 상실한 채 수치 속에 갇혀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강물의 곡선조차 수식의 노예지 않을까. 미리 누군가 짜놓은 궤도를 따라가는 데이터 조각처럼.

 

 그래도 물은 흐른다. 흐름은 있으나, 그것은 내가 아는 물리 법칙 안에서만 허용된 갇힌 흐름이다. ‘물은 진짜인가, 아니면 그저 과학적 환영일 뿐인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비는 신의 경고처럼 날카로웠고, 흩날리는 번개는 어둠 속에 잠긴 도시를 간헐적으로 드러냈다. ‘아무 문제없을 거야. 내가 계산한 대로라면….’

 그 프로젝트는 대단히 중요한 실습이었다. 폭우가 내린다는 기상청의 예보를 듣고, 교수님은 그 교량이 어떤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견딜 수 있는지 계산해보라고 하셨다. 수업에서 배운 대로 물의 흐름과 유속을 철저히 계산해 교량을 점검했다. 강을 가로지르는 구조물인 만큼 조금의 오차도 허용될 수 없었다. 물의 힘을 제어하는 일, 그것은 학문의 본질이었고, 나는 그 힘을 철저히 계산해야만 했으니.


 물의 흐름, 유량을 계산하는 기본 공식인 Q = A × V.

 여기서 Q는 유량(물의 총 흐름양)을 의미하고, A는 단면적, V는 유속이다. 이 공식을 기반으로 다리 밑을 흐르는 강의 유량을 정확히 계산했다.

 먼저, 폭우로 인해 유입될 수 있는 최대 강수량을 기반으로, 강의 단면적 A와 물이 흐르는 속도 V를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강의 단면적은 우리가 설계한 다리 기둥 사이의 간격과 높이에 맞춰 최대 유량을 견딜 수 있는 값으로 설정되었다. 단면적 A: 다리 밑을 흐르는 강의 단면적은 폭 50m, 깊이 5m로, A = 50m × 5m = 250㎡. 유속 V: 폭우로 인한 강물의 속도는 최대 4m/s로 예측되었다.

이 값을 기반으로 계산된 최대 유량 Q = A × V = 250㎡ × 4m/s = 1000㎥/s.

 이 다리 밑을 흐르는 물의 최대 유량은 1000㎥/s로 추산되었다. 다리의 구조적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나는 구조물의 부재가 받는 하중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동적 하중: 물의 흐름에 의해 다리 기둥에 가해지는 힘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식은

Cd는 항력 계수로, 1.2로 가정했다.

ρ는 물의 밀도(1000㎏/㎥)이다.

A는 다리 기둥의 단면적, 여기서는 10㎡로 설정했다.

V는 유속 4m/s. 이를 적용하면,

    


 F=96000N, 즉 다리 기둥에 가해지는 동적 하중은 96,000 뉴턴이었다.


 정적 하중: 다리 자체의 하중과 차량, 보행자 등의 하중을 포함한 값은 최대 300,000 뉴턴이었다. 동적 하중과 정적 하중을 더해 총하중을 산출했으며, 다리 기초가 견딜 수 있는 최대 하중은 400,000 뉴턴 이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붕괴하지 않도록 충분한 안정성을 보장하는 값이었다. 추가로 베르누이 방정식을 통해 물의 압력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이는 유체의 에너지 보존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P1과 P2는 다리 양 끝의 압력이고, v1과 v2는 각각 강의 상류와 하류에서의 유속이다. 하중과 압력 계산을 마무리하고, 결론을 내렸다.

 이 교량은 그 어떤 폭우에도 견딜 수 있다고. 수학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날 밤,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다리는 붕괴했고, 내가 계산한 물리 법칙은 이 밤의 폭우 앞에서 송두리째 무너졌다.

 그 재앙의 소식을 접한 건, 차가운 화면을 타고 흘러나온 뉴스 속보였다. ‘설마, 내 계산이 틀렸을 리 없다. 고작 몇 시간 전에 수치들을 다시 검토했고, 그 어떤 오류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가 무너졌다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비는 여전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고, 강은 포효하듯 넘실거렸다. 도착해보니, 다리의 잔해가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끔찍했고, 믿기 어려웠다. 이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니, 잔해는 여전히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차와 소방차의 사이렌과 함께 비명처럼 갈라진 강철과 콘크리트 조각들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나는 강가에 서서 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물이… 흐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폭우의 여파로 강이 잠시 고요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이 그 자체로 ‘멈춘’ 것이었다. 물이 그대로 멈춘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는 수리·수문학을 공부해 온 사람이다. 물은 늘 흐른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 내 눈앞의 강물은 마치 스크린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정지했다. 시간을 멈춘 것처럼 아니면 '코드 에러'가 발생한 것처럼.

 이 현상은 그저 자연재해일까? 아니면, 내가 의심해 왔던 시뮬레이션의 오류인가? 더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것도 잠시, 강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상했다. 흐름이 휘어졌다. 물의 흐름이 직선으로 가야 할 곳에서 비틀렸고, 곡선을 그리며 어긋났다. 완전 뒤죽박죽이었다. 마치 현실이 아닌 시뮬레이션 속에서 코드가 꼬인 듯 보였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건 누가와도 설명할 수 없다. 자연의 법칙이 이렇게 뒤틀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나 그 숨이 폐 깊숙이 들어오기 전에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럴 리가 없어!"

 "안 돼! 이건 아니라고! 다 계산했는데… 절대,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목이 터지라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소멸하는 듯했다. 맥이 풀린 채로 다리 잔해를 바라보며 헛된 외침을 반복했다.

 "세상이…. 진짜 시뮬레이션이란 말이야?"

 비명처럼 터졌던 외침은 희미해지고, 온몸이 떨렸다.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이레나.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그리고, 그 강물 속에… 자신이 보였다. 물속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아니었다.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다른 형태가 나타났다. 흉내문어가 변신하듯이, 눈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몸은 유연하게 일그러졌다. 팔과 다리가 비현실적인 각도로 휘어지며 촉수처럼 멋대로 휘날렸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물속에 비친 그 형체와 똑같이, 내 팔도 천천히 비틀리고 늘어났다. 살갗이 꿈틀대며 자아의 경계가 사그라지고 있었다. 나 역시 이 공간에 맞춰 변화하고 있었다. 아니, 변신인가…? 물리적인 나와 시각적인 나는 일치하지 않았다. 이것은 시뮬레이션이 만든 오류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오류는 나의 몸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이 느낌은… 내가 이 세계의 일부이자 동시에 그 틀을 벗어난 존재가 된 건가.

 

 경찰차와 소방차가 현장에 들이닥치고, 공무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이! 거기! 위험해요!” 소방관 한 명이 호각을 부르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강물이 불어났는데, 뭘 하는 겁니까! 얼른 나오세요!”

 나는 여전히 강변에 서서 다리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며,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나의 모든 감각은 여전히 강물 속에 머물러 있다.

 “외국인 아가씨. 빨리 나가세요!” 힘으로 버티는 나에게 다시 한번 소리쳤다. “아가씨가 힘이 왜 이렇게 세” 경찰과 소방관들이 나를 잡아채며, 어딘가로 끌고 가는 그 순간에도 한 발짝도 내딛지 않은 듯했다. 내 발은 여전히 그 비현실적인 흐름 속에 묶여 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집에 돌아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사이렌 소리, 소방관의 호각, 그리고 그 물의 흐름. 모든 것이 꿈같을 뿐.

      

 내가 본 것은 현실이었는가? 아니면, 그 흐트러진 세계 속에서 잠시나마 미쳐버린 것인가?

  

 관찰자로만 남을 수는 없었다. 이게 시뮬레이션이든, 현실이든,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든. 이제 호기심이나 의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답을 반드시 찾고야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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