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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Oct 03. 2024

제6화 자아란 무엇인가?

자유의지의 ‘허상’

 안상국 교수님은 살짝 찡그렸고, 김연수 교수님은 의아한 눈빛으로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먼저 입을 연 분은 안상국 교수님이었다. "또, 이거냐?"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도 이상한 공식 보여주지 않았니? 너희들이 보여주는 공식은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어. 그건 불가능한 시나리오야."

 "보시다시피, 그때는 토질역학과 관련된 공식이었어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자역학, 뉴턴의 중력 법칙, 그리고 유체역학의 낙하 운동까지 함께 다뤄본 거예요. 연속 방정식으로 풀어낸 거라,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내 목소리의 크기는 점점 낮아졌고, 교수님들의 시선이 더욱 엄중하게 느껴졌다. 숨을 고르며 노트에 적힌 복잡한 수식을 가리켰다. 사실, 공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어떻게 이 공식이 나왔는지조차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요. 단지… 이레나와 제가 함께 풀어내고 가정해 본 건데,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요."

 김연수 교수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너희 요즘 많이 피곤한 거 아닌가? 현실과 가정을 혼동할 때가 있어. 세상이 허상이라니, 그건 너무 과한 상상 아닌가?"

 교수님들의 단호한 반응에 속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선을 그어버리듯 확실하고 냉정했다. 아내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나는 그 경계를 허물고 싶었다.


 김연수 교수님은 안상국 교수님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나를 조용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재동 씨, 잠깐 연구실로 가볼까요?"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나를 안내했고, 이레나는 뒤에서 잠자코 뒤따라왔다. 

 아내가 몸담는 수리·수문학 연구실은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교수님은 나를 마주 보고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동 씨, 먼저 말해두고 싶은 것은, 당신과 이레나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과정이 반드시 일반적인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하지만, 혹시라도 정신적인 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문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교수님의 눈빛은 진지했다. "정신과라는 단어를 직접 꺼내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요즘 많은 사람이 심리적인 문제로 겪는 혼란이 생각보다 큽니다. 한번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올려둔 자료들을 펼쳤다. "제가 심리학을 부전공했거든요. 그래서 뇌와 자아, 그리고 인간의 의식에 관해 연구한 데이터가 좀 있습니다. 이게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요."

 교수님은 스크랩한 자료 중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보세요. 자아와 자유의지에 관한 연구입니다. 인간의 뇌는 자유의지를 가진 것처럼 느끼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결정이 이미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뇌 속의 전두엽, 특히 전두엽 앞부분인 전측대상회는 선택과 계획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선택'했다고 믿죠. 하지만, 이 선택이란 실제로는 뇌에서 발생하는 무의식적 신호 때문에 선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요."

 그는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뇌가 선택의 순간에 내리는 결정은 이미 몇 초 전, 또는 더 이른 시간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는 ‘자유의지’는 그 결정 이후에 뒤따라오는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죠."

 그는 잠시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재동 씨가 말했던 공식들… 그리고 그 공식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느낀 이상한 감각들. 그것들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당신과 이레나의 뇌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일종의 오류일 수 있어요. 특히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칠 때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기도 하고요. 우리의 뇌는 때때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왜곡하곤 합니다. 그 왜곡된 인식이 자아를 흔들거나, 때로는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현실을 재구성하게 하죠. 심리학적으로 보면, 당신이 겪고 있는 경험은 과학적 설명으로 해결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죠. 그 경험은 재동 씨와 이레나에게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겁니다."

 김연수 교수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의 말대로 자아란 실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재동 씨. 그저 우리의 뇌가 만든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허상은, 당신이 말한 우주 시뮬레이션이라는 생각과도 놀라울 만큼 잘 맞아떨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정확한 진단은 전문가, 그러니까 의사에게 가보는 게 좋을 겁니다. 뭐 의사라고 해서,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지만…." 그는 다시 한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끝냈다.

 교수님과의 상담으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그나마 이해해주고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비록, 상황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묵직한 감사함이 스며들었다. 


 아내를 설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서울대 병원으로 가보자고 말을 꺼낸 나에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병원을 가자는 거야?”

 “그냥… 상담 정도 받아보자는 거지. 요즘 네가 기억을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나한테 무슨 정신 문제가 있다는 거야?”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냥 요즘 좀 피곤해서…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뇌과학과 관련된 심리적인 부분일 수도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니까,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자는 거지.”

 아내는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서둘러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레나, 널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 아무 일 없으면 그게 제일 좋은 거잖아. 그치?”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녀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손을 빼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피곤함을 보았다. “알겠어, 하지만 결과가 이상하게 나오면 그 책임은 당신이 지는 거야.”


 서울대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꽤 조용했다. 길가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고, 우리도 그들 틈에 섞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옆에서 걷는 아내는 무표정이었고, 도착하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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