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자란 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티

by 이담

그렇게, 나는 독립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로 자라났다. 남들은 다 중학교 2학년 때 벼락같은 사춘기를 겪는 다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사춘기라는 게 없었다. 여전히 나는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엄마에게는 깍듯이 존댓말을, 그것도 극존칭을 사용해 가며 말했고, 부모님이 먼저 수저를 들기 전에는 밥을 먹지 않았다. 철저한 엄마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녁 식사시간이면 "아빠, 진지 잡수세요." 하고 아빠를 부르고, 아빠가 밥상에 와서 글라스 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 수저를 드시면 그때야 밥을 먹었다. 그건 공기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 친구 아버지께서 차로 나를 집까지 태워다 주신 적이 있었는데 거의 다 왔을 즈음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다. 평소 쓰던 말로 짧게 거의 다 왔다고 말하고 끊었던 것 같은데, 친구 아버지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혹시, 엄마가 새엄마냐고. 이 에피소드는 당시에는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후에는 엄마의 존댓말 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이야기할 때 재밌는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사실 그건 우리 집이 다른 집과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첫 번째 신호였다.

그랬던 중학생 때 당시 등하교를 매일 함께 할 정도로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가 늦어서 친구의 집안까지 들어가 친구를 기다린 일이 있었다. 친구는 친구의 어머니께 반말로, 사실 거의 명령조로 이런저런 요구를 늘어놓았고, 친구 어머니께서는 친구의 목소리가 짜증스러워지는 만큼 바삐 움직이셨다. 그때 나에게 이 장면은 거의 문화 충격이었다. 어떻게 엄마에게 저렇게 대할 수 있는 걸까. 짜증 반 애교 반으로 현관에 서서 동동거리던 그 친구를, 친구 어머니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가방도 메어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며 이것저것 챙겨주고 계셨다. 나는 친구에게 넌 어떻게 엄마가 공주님처럼 대해주냐고, 부러움 반 놀라움 반으로 물었을 때, 친구는 그게 부끄러웠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나에게 일렀다.

나는 오랫동안 이 장면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다. 어둡고 어쩌면 음침한 나와 달리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친구였기에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나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자라났던 것 같다. 함께 친했던 다른 친구에게 "걔는 엄마가 집에서 다해주더라"라는 식의 말을 전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얘기는 전해 들은 이 친구로 인해 담임선생님의 조회시간에 발표하듯 공표된다. "선생님 얘는 집에서 엄마가 공주처럼 떠받든대요." 이 말에 나는 경악하며 친했던 그 친구를 바라봤고, 그 친구는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곧 그런 게 아니라며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너무 곤란하고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변명을 한다 해도 뭐라고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런 네가 너무 부러웠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잘못을 사과하는 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 서툴렀다. 나는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은 가득했는데, 사실 억울한 마음이 더 컸었다. '나는 그렇게 나쁘게 말하지 않았어. 나쁘게 말한 건 네 옆에 있는 쟤잖아. 왜 나만 미워하는 거야.' 난 나름의 최선을 다해 편지도 쓰고, 문자메시지도 남기고 음성메시지도 남겨봤지만 잘못을 저질러 놓고 얼굴 보며 말로 사과하지 않는 나를 그 친구는 용서하지 않았다. 이 일로 나는 친했던 친구 무리에서 떨어졌다. 중학교 마지막 한 해를 홀로 보내야 했다. 나는 또다시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세 치 혀의 실수로 나는 또 버려졌기 때문이었다.

수년이 흐르고 나는 이사를 가며 친구를 만날 일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 아주 우연히 버스 뒷자리에 다른 친구와 앉아있다가 길가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 친구를 보았다. "야!" 하는 부름에 자동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잠시 친구를 못 알아봤다가 알아본 순간, 나를 따돌렸던 친구라는 생각에 표정이 굳었는데 친구는 여전히 해맑았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아, 왜 못 알아봐, 나야!" 하는 목소리가 버스 창을 통해 들려왔다. 악의라고는 한 점도 없는 반가움이었다. 버스는 무심히도 빠르게 지나갔지만 나는 대뜸 날아온 화살을 맞은 것처럼 멈춰 섰다.

나에게 남은 것은 또다시 원망이었는데, 친구에게 남은 것은 반가움이었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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