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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Aug 16. 2020

장마

최장 기간 장마가 불러온 단상

올해 장마는 54일로 역대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비가 이렇게나 길게 이어지다 보니 현실 같지 않았다. 물이 불어난 모습은 예전에 읽었던 김애란의 비행운을 떠올리게 했고 안개가 자욱한 풍경은 영화 미스트를 떠올리게 했다.

집 화장실 용품에는 잘 피지 않던 곰팡이도 스멀스멀 올라왔고 길거리에는 버섯들도 많이 보였다. 눅눅한 공기에 몸은 처지고 찌뿌둥했다. 뉴스에서는 수해민들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고 그 와중에 경남에서 밀양까지 80km를 떠내려가서 살아남은 소 이야기도 들렸다.

날씨에 따라 감정이 변하고, 입맛도 달라지고 주변 풍경이 달라진다. 이런 것들을 보면 내가 원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여겼던 감정, 감각들이 사실은 외부 환경에 의해 작동하는 것들이 많다. 그것들을 스스로 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발적인 의지로 행해지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원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들도 그런데 원치 않는 것들은 어떤가. 폭우로 집이 침수되는 것을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세상은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아도, 원한다고 하는 것도 원하지 않은 것일 수 있고,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최근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잃게 되었다. 아웃라이어는 보통의 범위를 넘어서는 예외적인 사람들로 소위 천재들을 의미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유명한 말을 낳은 책이기도 한데 즉, 누구든 어떤 분야에 1만 시간만 투자하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말만 듣고 보면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한다면 그 말을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다. 이 책이 유명해진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천재에 대한 편견을 뒤집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재들은 타고난 개인의 성질이라고 생각한다. 비범한 두뇌 말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개인에 초점을 두었던 천재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다시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돌아가 보자. 1% 성공한 사람들을 보니 1만 시간을 투자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1만 시간을 '어떻게' 확보될 수 있었는 지를 좀 더 들여다봤다. 그러니 빌 게이츠는 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원 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코딩 연습을 할 수 있었다.(당시 개인용 pc가 나오기 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IT 관련 종사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어 관련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더불어 이들은 모두 1950년대 중반 시기에 출생하여서 PC 여명기인 70년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에 IT 공룡들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IMF로 취업난 시기를 맞이한 80년대 출생의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는 어떤 아웃라이어가 나올 수 있는 걸까? 환경이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에 두서없는 단상들이 이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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