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이레놀

여러분은 약을 구매할 때 함량을 확인하시나요?

by 로리킴

타이레놀은 진통제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널리 사용돼 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인당 1년에 약 70알 정도 먹을 만큼 흔한 약이고, 약국뿐 아니라 슈퍼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안전성이 높은 약입니다. 타이레놀은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부르는 상품명이고, 영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파라세타몰(paracetamol)'이라고 부릅니다. 두 이름 모두 같은 성분을 가리키며, 화학명은 p-hydroxyacetanilide입니다. 이 이름은 구조를 설명해 주는데, 1) para(p-)는 벤젠 고리에서 마주 보는 위치를 말하고, 2) hydroxy(-OH)는 알코올 성분, 3) acetanilide는 아세틸기와 아닐린 구조를 가진 분자라는 뜻입니다.


이 성분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acetaminophen(미국식 이름), p-acetylaminophenol(구조를 설명하는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페놀(벤젠 고리에 OH)의 para위치에 아세틸기(acetyl)가 붙은 아미노기(amino)가 달렸다는 의미입니다. 즉, 타이레놀, 파라세타몰, 아세트아미노펜은 모두 같은 성분이고, 그 구조는 진통효과가 있는 특별한 형태의 페놀 화합물입니다.

p-hydroxyacetanilide


타이레놀은 열을 내리고 (해열), 통증을 줄여주는 (진통) 약입니다. 보통 먹은 후 30분~1시간 정도 지나면 효과가 나타나고, 효과는 4~6시간 정도 지속됩니다 (단, 제품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타이레놀 제품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차이첨을 찾아보시겠어요?

이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함량'입니다. 한 박스에 들어있는 전체 용량도 다르고, 한 알에 들어 있는 성분의 양 역시 다릅니다. 왼쪽 제품은 약효가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나도록 설계된 서방정이고, 가운데 제품은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의 타이레놀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제품은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입니다. 모두 같은 성분을 가지고 있지만 얼마나 들어 있는지, 몇 정이 들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제품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약이 이렇게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판매되고 있을까요? 또, 왜 약국에서 파는 타이레놀과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서로 다를까요? 이러한 궁금증은 타이레놀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습니다.


타이레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개발된 약이 아니라, 어느 날 우연히 등장하게 된 약입니다. 이 성분을 처음 합성한 사람은 미국의 화학자 하먼 모스(Harmon Northrop Morse)입니다. 그는 독일에서 학위를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와 그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창립 멤버로 연구를 이어갑니다. 당시에는 의대 중심의 연구 환경 속에서 화학자가 주도적으로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삼투압에 관한 중요한 연구 성과를 남깁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과학사에서 무엇보다도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을 처음 합성한 인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877년,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방식인 p-아미노페놀(p-aminophenol)이라는 물질을 출발점으로 하여 아세트아미노펜을 만들어 내는 방법입니다. 물론 화합물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바로 약으로 쓰인 것은 아닙니다. 이 성분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해열이나 진통 효과를 주는 안전한 약으로 인정받기까지는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사이에는 여러 화합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1884년, 프랑스의 의사 아돌프 쿠스몰(Adolf Kussmaul)의 두 조수였던 아놀드 칸(Arnold Cahn)과 폴 헵(Paul Hepp)은 장염 치료제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프탈렌이 좀약으로 쓰일 만큼 강력한 항균 효과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위장 질환 치료에 활용해 보려는 생각으로 약국에 나프탈렌을 주문합니다. 이 약은 성공적으로 환자들의 고열과 통증 증상을 완화시켰고, 쿠스몰과 두 조수는 큰 기대를 안고 같은 약을 다시 주문합니다. 그런데 이때 약사가 실수를 고백하며(dispensing error), 앞서 판매된 약은 실제로는 나프탈렌이 아니라 아세트아닐리드(acetanilide)라는 화합물이었음을 밝힙니다. 겉보기에는 색상이 비슷했지만, 나프탈렌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뒤늦게 착오를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렇게 우연한 실수가 새로운 약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이후 일은 빠르게 전개됩니다. 1886년, 아세트아닐리드의 해열 및 진통작용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었고, 이듬해인 1887년 안티피브린 (Antifebrin)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됩니다. 지금은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이 약은 무려 1971년까지 약 100년간 판매된 역사적인 진통제로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정작 진통제의 왕좌에 앉은 약물은 1888년 출시된 페나세틴(phenacetin)입니다. 페나세틴은 1887년, 유명한 독일 생리학자이자 의사인 조셉 메링(Joseph von Mering)이 바이엘(Bayer)과 함께 연구하던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메링은 석탄을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coal tar)에서 흥미로운 두 가지 물질을 분리합니다. 하나는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고, 다른 하나가 페나세틴(phenacetin)입니다. 메링은 두 화합물의 효과를 비교하던 중, 아세트아미노펜이 '매트헤모글로빈혈증(methemoglobinemia)', 즉 산소를 제대로 운반하지 못해 피부가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약효 면에서도 페나세틴이 조금 더 뛰어나 보였기 때문에, 결국 아세트아미노펜은 한동안 외면받게 되고, 페나세틴이 대중적인 진통제로 활용되게 됩니다.

페나세틴은 오랫동안 해열, 진통제로 사용되던 약입니다. 한때는 'APC'라고 불리는 조합-아스피린(aspirin), 페나세틴(phenacetin), 카페인(caffeine)-이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페나세틴은 효과가 강하고 빠르다고 소문이 나면서 널리 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점도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스위스에서 시계를 수리하던 장인들 사이에서 이상한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이들은 작은 시계로 일할 때 집중이 필요해서 두통약인 페나세틴을 자주 복용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신장 질환이 발견됩니다. 결국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페나세틴과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부작용이 다시 조사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처음에 페나세틴을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메링의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사실 페나세틴은 몸속에서 두 가지 경로로 대사 되는데, 하나는 신장질환과 매트헤모글로빈혈증을 일으키는 독성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전환되어 해열, 진통효과를 내는 경로입니다. 즉, 문제의 원인은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니라, 페나세틴 그 자체였고 매트헤모글로빈혈증은 아세트아미노펜과는 아무 관련 없는 질병이었죠. 하지만 이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세트아미노펜은 한동안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잊혀진 약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뒷방에 묻혀 있던 아세트아미노펜은 드디어 1953년, 세상 앞에 다시 등장합니다. 이 사례는 지금도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약(lost and found)' 혹은 '놓칠 뻔한 발견(hit and miss)'이라 불리며 남아있습니다.

이 때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바이엘의 해외 지사들이 각자 독립된 계열사처럼 흩어졌던 시기입니다. 영국에 있던 바이엘 유한회사는 이 틈을 타 아세트아미노펜에 파라세타몰(paracetamol)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합성법도 공개하며 본격적으로 이 약을 홍보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미국에서 바이엘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회사는 스털링(Sterling)이었는데, 영국 측은 스털링에 "이거 사볼래?"라고 제안하지만 스털링이 이를 거절하게 되고, 결국 미국의 맥닐연구소(McNeil Laboratories)가 판권을 넘겨받습니다. 이후 맥닐연구소는 이 약에 타이레놀(Tylenol)이라는 상표를 붙여 미국 시장에 1955년 본격적으로 출시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영국 사람들은 이 약을 파라세타몰(paracetamol), 미국 사람들은 타이레놀(Tylenol)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이름 뒤에는 역사 속 선택의 결과가 숨어 있습니다.

맥닐연구소는 타이레놀을 아이들을 위한 약으로 출시하면서, 작고 귀여운 빨간 소방차와 노란 스쿨버스 모양의 병에 담아 판매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보입니다. 이 패키지는 단숨에 인기를 끌었고, 지금 봐도 사랑스럽고 인상적인 디자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타이레놀은 훌륭한 약효과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맥닐 연구소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후 맥닐은 글로벌 제약회사인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에 인수되며, 오늘날에는 얀센(Janssen)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됩니다.

게다가 1970년대에는 들어서면서, 진통제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아스피린을 복용한 후, 갑자기 호흡 곤란과 의식 저하를 동반한 라이 증후군(Reye's syndrome)이 보고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희귀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아스피린의 소아 사용이 제한되면서 대안으로 아세트아미노펜의 인기는 급격히 높아집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국의 제약사 부츠(Boots)에서 이부프로펜(ibuprofen)이 개발되며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진통제 삼대장'-아스피린, 이부프로펜, 타이레놀-이 완성됩니다.


1953년 등장한 타이레놀은 지금까지도 진통제의 왕좌에 앉아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널리 쓰였다는 건 그만큼 효능과 안전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긴 역사 속에서 단 한 번의 사건도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남녀 7명이 이유 없이 갑자기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조사를 통해 이들이 복용한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cyanide)가 섞여 있어서 사고가 일어났음이 밝혀집니다. 얀센은 시카고 전역의 타이레놀 제품을 즉시 전량 회수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사건이 퍼지면서 '내가 범인이다, 앞으로 안전을 원하면 돈을 내라"는 협박도 등장하지만, 끝내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타이레놀의 시장 점유율이 35%에서 8%로 급감합니다. 하지만 신속하고 진정성 있는 회사의 대응으로 1년 만에 신뢰를 회복했고, 오히려 이 사건은 의약품 포장 방식에 혁신을 가져오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복용 전 약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익숙한 세이프티 실(safety seal)이 처음 도입된 것이죠. 포장이 훼손된 경우 절대 복용하지 말라는 문구도 함께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 대부분의 의약품과 건강보조식품이 이 방식을 따라가게 됩니다. 타이레놀은 그렇게 또 한 번, 의약계에 중요한 기준을 세운 사례가 됩니다.

그렇다면, 타이레놀은 정말 완벽하게 안전한 약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타이레놀은 임산부나 아이도 복용하는, 70년 넘게 전 세계에서 안전하게 사용되어 온 해열, 진통제이지만 어떤 약이든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은 없습니다. 특히 과량 복용 시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약이라는 점은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타이레놀은 섭취된 후 90% 이상이 간에서 안전한 경로로 대사 됩니다. 하지만 이미 간이 손상되어 있거나, 과음으로 간 기능이 저하된 상태, 혹은 용량을 초과해서 복용한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간이 대사를 감당하지 못하고, NAPQI(N-acetyl-p-benzoquinone imine)라는 독성 대사산물이 생성되는데, 이 물질은 간세포 안의 중요한 단백질들과 결합해 간손상을 유발합니다.

물론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항산화제인 글루타티온 (glutathione)이 충분하다면 NAPQI가 간세포에 해를 끼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 몸에는 이 독성 물질을 해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을 혹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전날 과음으로 두통이 있다고 타이레놀을 찾으면 약국의 약사는 아마 조심스럽게 "오늘은 드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할 겁니다. 알코올과 아세트아미노펜은 모두 간에서 대사 되기 때문에, 같이 복용하면 간에 부담이 더해지고, 독성 물질이 더 많이 생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아세트아미노펜은 많은 종합 감기약에 복합 성분으로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감기약을 이미 복용한 상태에서 아직 열이 있는 것 같아 타이레놀을 추가로 복용한다면 의도치 않게 과다 복용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이유로,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타이레놀에는 1 정당 500mg짜리 8정, 총 4,000mg 이하만 들어 있도록 제한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혼자 한 통을 사더라도, 하루 최대 권장 용량을 넘기지 않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다음 날이면 약국에서 전문가의 복약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약국에는 서방정(sustained-release) 제품도 출시되어 있습니다. 650mg가 서서히 방출되는 제형으로, 약효가 길게 지속되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과다 복용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더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650mg 서방정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타이레놀 한 통에는 단순한 약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분 구성부터 포장 방식,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의 약학, 안전 기준, 소비자 문화가 응축되어 있는 셈이죠. 타이레놀 할 알이, 이제는 여러분에게 조금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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