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48.

명절과 용돈

by Ellen Yang


이제 곧 유례없는 연휴를 품고 추석이 온다.


추석이라는 민족 대명절(또는 민족 대이동)의 추억을 회상하다 보면 어린 내가 명절을 기다렸던 이유가 매우 세속적이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곤 한다. 그 심한 멀미를 꾹 참고 열 시간을 넘게 갇혀있어야만 했던 극한의 귀성길 차량 행렬 속을 버티며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가고 싶어 했던 이유의 8할 이상은 '명절 용돈벌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사촌들을 만나 논밭을 뛰어다니며 즐겁게 노는 것, 맛있는 명절음식을 먹는 것도 명절이 기다려지는 이유였긴 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형제자매가 많다. 두 분 다 7남매, 8남매를 두신 대가족의 일원으로서, 명절마다 시골집에 모이면 그렇게 작지도 않은 시골집의 방이며 마당이며 심지어 집 근처 정자까지 친척 어른들과 사촌들로 넘쳐났다. 이렇게 세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랐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들, 외삼촌과 이모들은 매 명절마다 빳빳한 지폐를 꼭 챙겨 오셔서 조카 한 명 한 명에게 용돈을 나누어 주시곤 했고, 우리의 주머니를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많은 않은 액수의 지폐들로 부풀어 올랐다.


(집마다 적어도 둘은 있는) 조카들에게 인당 만 원이 기본 용돈이었고 심지어 입학과 졸업을 맞이할 조카에게는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챙겨주시던 게 관례(?)였던 그때, 그 시골의 명절 풍경. 종종 명절 전에 살뜰히 천 원짜리 지폐를 바꿔두시고는 어린이는 3천 원, 청소년은 5천 원씩을 주셨던 막내 작은 아빠 댁이 얄밉게 보일 때도 있었으나 (공짜 용돈을 받으면서 별 요망한 생각을 다했다 싶어 낯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다.) 주머니 두둑이 차오르는 용돈은 언제나 반갑기만 했다.


특히나 친가 쪽에는 서울에 적을 두고 있는 게 우리 집뿐이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도 '서울 손녀들'을 유독 더 아끼고 예뻐해 주셨고, 다른 사촌들 몰래 주머니에 만 원짜리 지폐를 쑥 넣어주시고는 했다. 그러면 으레 자본주의의 향내가 짙게 묻어있는 자동반사적 애교로 조부모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만들곤 했었더랬다. (얄팍한 진심만 담긴 애교에도 곧잘 즐거워해주시던, 지금은 돌아가신 네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나 괜히 마음이 울컥해진다.)




일전에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우연히 조카에게 주는 선물과 용돈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요즘은 애들이 5만 원 권 지폐 하나로도 크게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며 놀라기도, 본인들 취향이 너무 확고해서 웬만한 선물을 주면 좋아하는 기색을 보기 어려우니 괜히 시간들이고 돈 들여 선물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용돈을 주는 게 낫다 등등.


그러다가 문득 우리 또래는 이제 친조카라고 해봤자 두어 명 있는 게 전부인데도 선물과 용돈에 대한 부담감이 이렇게나 큰데, 그 당시 엄마와 아빠, 그들의 형제자매들이 느꼈을 조카 용돈에 대한 부담이 어땠을까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동생은 용돈을 받는 입장이었다지만 엄마와 아빠 입장에서는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용돈으로 줄 현금을 매 명절마다 챙겨가셨어야 했던 거구나라는 깨달음도 뒤늦게 (뒤늦게나마?) 찾아왔다. 그리고 그 시절 어른들이 얼마나 명절이 부담되셨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괜한 안쓰러움과 철없던 내 모습이 겹쳐져서 눈앞에 일렁인다.



그저 용돈이 반갑던 어린 시절은 눈 깜짝할 새에 '반짝'하더니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자 과거로 남겨져버린 그 좋던(?) 시절.


이제 그때 나와 같이 용돈을 받던 사촌들은 우리네 부모님들처럼 한 집에 한둘씩 아들 딸을 두고 있다. 이 말인 즉, 오랜만에 집안 행사나 명절에 만나면 용돈을 챙겨주어야 할 조카들이 쑥쑥 늘어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친한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 이들의 아이들이 함께 나오면 뭔가 지갑에 얼마라도 현금을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 압박도 들고 말이다.


이제는 어린 내가 받았던 만큼 내가 만나는 어린 이들에게 용돈과 선물을 주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어릴 때는 용돈 풍작이었던 명절은 이제 내 지갑에 보릿고개를 몰고 왔음에, 어른의 자리가 녹록지 않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인생은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함을, 역시나 인생에 공짜는 없음 절감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2025.09.18.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