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56.

첫 캠핑, 아니 글램핑의 추억(1)

by Ellen Yang


부쩍 서늘해진 바람, 높고 청명한 하늘을 보면 가을이 왔음이 새삼 실감 난다.

차가운 겨울을 앞두고 나무들이 따듯한 색감을 마음껏 발산하는 가을의 정취가 온사방에 들어서고 있는 요즘, 부쩍 짧아지고 있는 이 멋지고 아름다운 가을날을 최대한 많이, 가능한 한 오래 즐기려는 마음으로 자연 속으로 캠핑을 떠나는 이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것 같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 또는 근교로 1박 2일 호캉스를 떠난다고 해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내 나름의 필수 물품들을 주섬주섬 담고 담아 결국은 봇짐장수의 짐보따리를 만들고야 마는 여행계의 맥시멀리스트이다. 짝꿍이라도 미니멀리스트이면 좋으련만 그 역시 도라에몽 가방의 소지자로서 언제나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혹시나 필요할지도 모를 물건은 일단 가방에 넣고 본다. 이런 둘이 만났으니 국내여행이건 국외여행이건, 심지어 그게 당일치기 여행이라 할지라도 챙겨드는 짐의 부피와 무게란... 말하면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 부부에게 캠핑이란, 텐트부터 시작해서 주방용품은 물론 음식 재료에 세면도구, 옷가지까지 챙길 것도 많고 번거롭기 그지없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 활동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우중 캠핑이라도 할라치면 그 모든 소지품들을 어디다 말리나 싶은 아찔한 상상에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거기에 뭐 하나 편한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임에도 '캠핑 (+감성)'이라는 글자가 붙은 용품들이란 어찌나 비싸던지. 이랬던 탓에 우리는 (어쩌면 내가 유독?) 캠핑과는 꽤나 먼 거리를 유지하며 마음을 내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도 캠핑의 바람이 살랑살랑 귀를 간질일 때가 있었으니, 2022년 가을이었다.


시작은 어린 시절 나와 가장 가까웠던, 한 살 터울의 사촌언니가 캠핑족이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이다. 저마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니 친지의 경조사가 아니면 서로 얼굴조차 보기 힘든 사이가 되어버린 언니와 난, 그 해 6월에 있었던 사촌동생의 결혼식에서 정말 오랜만에 조우를 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더랬다. 서로의 근황토크가 한창이던 그때, 언니네 가족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송글거리는 한여름이나 극한의 매서운 추위가 기승인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캠핑을 다닌다는, 무척이나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아는 언니는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캠핑이란 웬만한 부지런함과 빠릿빠릿함, 철저한 준비성 없이는 즐거울 수 없는 활동이었다. 이 말은 곧, 내 기준에서는, 이 둘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융화될 수 없는 관계였던 건데, 이 둘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했다니!


그러면서 갑자기, 내가 만약 캠핑을 하게 된다면 언니가 가진 그녀만의 여유로움, 느긋한 성품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매사에 고슴도치 마냥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는, 빈틈을 보이려 하지 않는 까칠하고 피곤한 성향을 가진 나에게, 캠핑이 '그 순간의 시간 흐르는 대로, 그 순간에 내 손에 있는 것만으로, 그 순간을 그대로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을까?


언니 가족의 캠핑 이야기를 들으며, 캠핑 사이트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내 머릿속은 '몇달 후에 가을이 오면 단풍놀이 삼아 캠핑을 가야겠어!' 라는 욕망으로 꽉꽉 채워져 버렸다.




그리고 몇개월 뒤. 드디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슬슬 가을의 향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캠핑을 가야할 때가 왔어!'

하지만 무턱대고 그 비싼 텐트며 조리도구 같은 용품을 턱 하니 살 수도 없는 노릇. 말로만 캠핑, 캠핑 노래를 불렀을 뿐,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던 내게 두눈이 번쩍할만한 단어가 보였다. 바로 '글램핑'이다. 그리고 이는 대번에 혹하고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가 무언가 하자고 했을 때 단 한 번도 NO를 외친 적이 없는, 영원한 나의 예스맨인 짝꿍은 이번에도 갑자기 캠핑에 콧바람이 단단히 든 나를 열혈보좌하며 신나게 글램핑장을 알아봐 주기 시작했다. 열심히 손품을 팔아 우리가 찾은 곳은, 양재 근처의 한 캠프사이트였다. 부대시설이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평이 많아서 마음이 갔음은 물론, 집에서도 가까웠기 때문에 혹시나 캠핑이 기대만큼 즐겁지 않다거나 또는 잠자리가 불편하면 빠르게 집으로 복귀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글램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캠핑장치고는 제법 가격대가 있어서 저렴한 호텔 1박 정도의 숙박비용을 들여야 했지만, 일일이 캠핑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텐트 안에 침대에 에어컨까지 구비하고 있는 글램핑장을 예약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예약을 감행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글램핑을 떠나기 전날.

짐을 싸기 시작하면서부터 캠핑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초심, '그 순간의 시간 흐르는 대로, 그 순간에 내 손에 있는 것만으로, 그 순간을 그대로 즐기는' 방법을 배워오겠다던 그 초심은 어느 순간부터 종적을 감추고 사라지고야 말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2025.09.26.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