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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Eddie Kim Apr 14. 2023

바르셀로나에서 두 달 살기 #1

근교 여행하기 01. 계획 없이 떠난 시체스



MBTI가 INFJ인 나는 갑작스러운 일탈, 계획 없는 이벤트에는 도전하지 않는 편이다. 준비 없이 마주하는 상황으로 인해 틀어지는 것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이 그렇다. 철저하게 일분일초 단위의 계획을 짜는 편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큰 그림의 일정은 짜두는 편이고, 이렇게 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당황스러운 일들을 미리 대처할 수 있게 온갖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린 후 안정을 찾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이번 여행은 좀 특별한데, 이유는 별 것 없다. 스스로를 좀 놓아주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을 해보자를 목표로 세우고 일상에 여백을 두며 살아가는 생활을 해 보는 것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의 나라면 하지 않을 무계획 근교 여행을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떠나게 되었다.


시체스 역에서
기찻길 옆 그래피티가 인상적이다


혼자 하는 여행이니 시작 시간도 내 맘대로. 늦은 오후 렌페 기차표를 약 9.9유로에 구입하고 약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근교 시체스(Sitges)는 영화제로도 유명한 휴양도시이다. 동성애자들에게도 사랑받는 도시라고 어딘가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 레인보우 깃발이 달려있었다. 우연히 만난 한국인 동행과 함께 해변가로 걸어가는 좁은 골목이 바르셀로나와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느낌이 있었다. 시체스에서 받은 색감의 느낌은 따뜻한 노란색이었는데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 빛 바다, 그리고 아이보리 건물 이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시체스 골목에서
<푸른 바다의 전설> 드라마에 나왔다던 산트 바르토메우 이 산타 테클라 성당으로 걸어가는 길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바르셀로네타는 깔끔하게 정돈된 도시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그에 반해 시체스 해변은 휴양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시체스 해변이 더 마음에 들었다. 동행이 돗자리처럼 깔고 앉을 수 있는 천을 구매하여 함께 해변가에 앉아 넋 놓고 시간을 보냈는데 여유롭고 힐링되는 건강한 에너지들이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돌아가는 기차만 아니었어도 바닷가에 뛰어들고 싶을 만큼 에메랄드 빛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속에 나 역시 동화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에 앉아있다 해변길을 산책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잘 가지 못했던 해변이라 그런지, 이국적인 풍경과 느릿하게 가는 시간 때문인지 온통 마음이 바다를 향해 있었다. 물멍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라니. 시간만 좀 더 있었으면 해변가에 누워 낮잠 한 숨 자며 유러피안 흉내를 내고 싶었다. 바르셀로나도 둘러보지 않고 갑작스럽게 방문한 시체스 덕분에 부산스러웠던 지난날이 조금 잊혀져 가는 것 같았다. 조만간 다시 한번 시체스에 와보고 싶다.


따뜻한 색감의 노란 시체스의 골목들이 생각나는 피스타치오 젤라또.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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