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가우디와 그의 건축들
우리 학교는 2학년 때부터 전공을 선택할 수 있어서 나는 2학년 때 실내 디자인과를 선택했다. 어렸을 때부터 실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실내 디자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수업인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어떤 과제의 리서치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우디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때 가우디의 작품을 찾아보며 유려한 곡선의 사용에 대해 영감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리서치를 통해 알게 된 가우디의 건축물을 그때는 직접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몇 년 전에 한 번, 그리고 오늘 총 2번이나 보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 예전에 바르셀로나에 짧게 여행으로 왔을 때 꼼꼼하고 온전히 보지 못한 그의 작품을 이번에는 투어를 통해 가우디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다녔다. 이번 투어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이유는 가우디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인간 가우디에 대해서까지 인문학을 곁들인 밀도 있는 설명을 듣게 되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투어는 가우디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순서대로 보는 일정이었다. 덕분에 가우디의 시작이 어땠는지, 어떤 것에 영감을 받게 되었는지 가우디의 시선으로 나 또한 찬찬히 따라가게 되었다. 초기 작품이었던 까사 비센스(Casa Vicens)는 가우디의 데뷔작으로 가운데 타일을 기준으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타일을 쓰는 디테일에서부터 가우디와 차이가 난다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증축된 부분과 가우디가 만든 부분의 차이가 보여 놀랍다. 처음에는 의뢰받고 건축 책 보면서 좋아 보인 것들을 짜집기 하며 작업했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대단하다. 이때에는 온전한 타일을 사용해서 작업을 했는데 이후에는 부셔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직선은 사람이 만드는 것, 곡선은 자연이 만드는 것이라는 본인의 신념을 담아.
까사 바트요(Casa Batlló)와 까사 밀라(Casa Milá)
말해 무엇할까. 두 번째 까사 바트요(Casa Batlló)와 까사 밀라(Casa Milá)는 볼 수록 나를 더 두근거리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당시에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비평하며 해골모양의 발코니를 폄하하는 등 여러모로 가십거리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바트요 또는 밀라였다면 후대까지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며 남길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사 바트요는 화려한 외관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카탈루냐 지역의 산 조르디 전설 덕분에 눈길이 자꾸 가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산 조르디의 창, 용의 모습, 용의 눈 등 모든 것이 파사드에 담겨있어 전설을 듣고 나면 까사 바트요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청명한 하늘 아래 강렬한 색채의 지붕, 마치 연못 위에 떠 있는 수련 같은 패턴들이 멀리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고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번 여행으로 처음 알게 된 것인데 현재 까사 바트요 주인이 츄파춥스 후손이라는 것. 돈이 많아서 그런지 내부 관람을 할 때 더 몰입이 잘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이 많았던 것 같다. 까사 밀라는 내부에 아직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겉에서 볼 때 유기적인 어떤 물체 같다고 느껴졌다. 건물 자체가 주는 곡선의 형태가 너무 특별해 보였다. 당시에는 최초로 인터폰과 지하 주차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건축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 점은 가우디가 단순히 아름다운 심미적인 건축물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적, 기능적인 측면까지 고려한 혁신적인 건축가라는 것이다. 점점 더 차오르는 존경심을 느끼며 4번째 작품인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구엘공원이 동화 속 같은 색채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오늘은 하늘이 파랗고 높아서 그런지 공원 분위기가 굉장히 밝고 반짝거렸다. 원래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무등산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공원으로 조성되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을지 그려진다. 구엘공원의 모든 것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곡선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모든 것들이 곡선이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마치 제자리인 냥 잘 자리 잡은 돌조각들, 의자 형태에 맞춰 붙여진 깨진 타일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전경, 빗물조차 용도 없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쌓은 자갈과 모래, 그 아래의 마켓 공간까지 디테일한 설계에 감동받으며 눈에 차곡차곡 담았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에서 영감 받은 경비원을 위한 집까지 공원의 모든 것들이 가우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시간이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사실 나는 집안이 불교이기는 하지만 독실한 신자는 아니다. 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인생에 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내게 큰 울림을 준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웅장한 모습에 울컥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가까이에서 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장관이었고 그 조각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싶어 오랫동안 올려다보았다. 카사 비센스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둘 다 1883년 같은 해에 공사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전달하는 느낌이 다른 건축물이 같은 해에 공사되다니 놀랍기만 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돌에 새겨진 성경책이라 불릴 정도로 파사드 자체에 예수님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표현해 두었는데 앞뒤로 탄생의 파사드, 수난의 파사드라고 불려진다. 수난의 파사드는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가 만들어 놓은 현대적인 느낌의 파사드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가우디의 터치가 보이는 탄생의 파사드가 굉장히 눈길을 사로잡는다면 내용은 수난의 파사드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수난의 파사드는 수비라치 본인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당시에는 비판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본인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모습이 나는 눈에 띄어 좋았다. 외관의 상단 장식들이 주교의 물건들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된 모습, 마방진의 숫자들, 예수의 죄명 48의 표현, 몬주익 언덕보다 낮게 함으로써 바벨탑 마냥 신에게 대항하지 않도록 설계한 것 등 이 건축물 하나에 가우디가 온갖 모든 신경을 다 쏟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종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되는 느낌을 받는다. 곧게 뻗은 키가 큰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고요해지는 이 기분에 취해 한동안 미사를 드리는 곳에 앉아서 노트에 감상을 남겼다. 이런 대단한 건축물을 볼 때면 정말 신은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믿어보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간질거린다. 스테인글라스 사이로 시간대마다 다른 컬러로 들어오는 빛의 모습이 찬란하다. 사진으로는 제대로 안 담기는 것 같아 눈으로 열심히 보고 왔는데, 다른 시간대에서도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어 진다.
지하로 내려가면 박물관이 있고 그곳에 가우디의 데스마스크가 있다. 안타깝게도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우디를 이렇게라도 보며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고를 당했을 무렵 노숙자로 오해하고 오랜 시간 방치해 두었다고 들었는데 너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 같아 안타까웠다. 가우디의 시신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영면해서도 자신의 성당 안에서 후대의 건축가들이 만들어가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심정은 어떤지 궁금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가우디를 느끼며 투어를 마쳤는데 인간 가우디의 삶과 그의 건축물을 통해 배운 게 많은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함을 느꼈다.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