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말한다. 죽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작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해서 실제로 실행했는데, 막상 죽으려는 순간에는 살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 순간에는 모두 다 자기 판단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굉장히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하게 되고 어느 순간 용기를 내서 실행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인 용기는 아니지만 어떻든 자살은 엄청난 용기의 결과다.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뜻이다. 본인의 여러 가지 원은 때문에 자기 통제력을 잃은 후에 일어나는, 오랜 시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듯 우리가 자살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 즉 죽고 싶어 죽는 것이라거나 즉흥적인 판단의 결과라는 것은 모두 틀린 말이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유성호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최근에 사회 유명인사들의 불행한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가장 큰 문제는 자살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며, 또한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어떤 사람은 유전적 성향으로 인해서 옳지 못한 선택을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소속감 부재"와 이에 따른 "대화의 단절"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특히 노년층에서 이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가, 기대했던 가족 간의 유대감 상실, 소속감 등의 상실과 부재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헌신적으로 평생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왔지만, 퇴직하면 직장동료들과 어울리기 힘든 현실이다. 회사에 올인하다 보니, 소중한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정서적 소통할 수 없는 대상이 없다 보니, 우울감을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에는 주 40시간 근무와 워라벨 등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나를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동안 찾아야 하는 "행복"이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품의 있는 죽음이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상태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본질은 생명체의 소멸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는 소멸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