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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a Oct 25. 2024

학교 가자

# 2. 이야기 둘, 친구를 기다리며

학교가 끝나고 정문 본 적 있는 노란 스커트가 보였다.  하늘 거리는 호랑나비 날개처럼 예쁜 모양이 본 적 있는 스커트.

엄마!

엄마가 손을 흔들며 오라 손짓한다.


" 엄마!"

"  학교 재밌었어? 잊어버린 거 없고?"

" 응. 그런데,  학교 왜 왔어?"

" 우리 연이 맛난 거 사주려고!"

" 범이는 어떡하고?"

" 할머니한테 잠깐 맡겼어. 뭐 먹고 싶어?"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집에 돌아가는 기분은 하늘의 구름처럼  포근하고 따뜻하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 오늘 학교 어땠어? 친구들이랑 잘 놀고? "

" 응."

그런데, 저게 뭐지...

 건너편에 버드나무 머리가....

그 긴 머리가 한 가닥도 안 남았다.

가지도 얼마 안 남고 몸뚱이만 남았다.

매일 아침 인사를 해준 친구...

친구가 벌거벗고 있다. 벌거 벗겨지고 있었다.


" 오라잇! 오라잇! ㅡㅡㅡ이잇...... 스톱!"


커다란 트럭이 싹둑싹둑 잘라진 가지를 모두 쌓아 넣어 버리고 있었다.

 쥔 엄마 손을 잡아당겼다.

" 연아, 왜 그래?"

엄마가 나를 보고 다시 신호 건너편을 보았다.

" 어머나... 나무를 자르구나. 병이 났나?

저런. 아예 다 뽑아 버리네? "

" 왜? 왜! 자르는 거야?"

" 응.. 글쎄. 나무 병이 들었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에 방해가 되면 공무원 아저씨들이 저렇게 해. "

신고가 초록으로 바뀌고 엄마와 나는 버드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녹색 천막으로 가려진 버드나무는

몸뚱이 일부만 조금 보여서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구우이...위이잉! 구우이...위잉!"

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천막 안에 버드나무가 잘려 나가고 있다.


나무의 몸뚱이가 잘려나가는 소리는 거칠지 않았다. 언제나 조용히 말 걸어주던 나무의  몸이 쇠톱에 잘려 나가는데 , 치과에서 기계로 이빨 치료할 때 소리보다 부드러웠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무디게 들린다.

엄마가 가끔 만들어주던 카스텔라 같이 느껴졌다.

버드나무잘려 나가는데 왜 세상은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거야....

이상하다.

내 두 귀를 엄마가 손으로 귀마개를 해 준 것이었다.

엄마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

엄마가 그제야 내 귀에 덮어준 두 손을 떼어주며, 

" 연아, 나무 파편 튀니까 빨리 가자." 

엄마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톱니의 날카로운 이가는 소리가 잠깐 들렸다.

굉음 순간 멈추고 커다란 크레인이 버드나무를 지면 위로 뽑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에 끌려 친구의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 걸 보면 울 거 같아서 눈을 감고 엄마 손을 붙잡고 따라갔다.

지금 뒤돌아 보면 밑동까지 뽑혀 버려져 가는 친구가 보일 텐데...


" 미안해.. 미안해... 도와주지 못해서... 친구야..

엉 엉 엉... 정말 미안해."

어느새 눈물범벅이 된 나를 본 엄마가 깜짝 놀랐다. 내 눈에 나무의 파편이 들어간 줄 안다.

울음을 멈추지 않아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눈이 퉁퉁 부은 채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 연아, 학교 가야지!"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내가 깨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엄마가 깜짝 놀랐다.

" 눈 아파? 병원 갈까?"

병원? 병원 가느니 학교 가야겠다.

얼굴을 찬물로 어푸어푸 세수하고 집을 나섰다.

주택가 개들이 그르렁 거려도 관심 없다.

너희들이 뭐라 해도 이젠 다 귀찮다.

상대할 기분이 아니다.

무관심이 용기를 안겨 주었다.


플라타너스도 은행나무도 오늘은 조용하다.

모두 친구의 이별을 아파하나 보다.

점점 버드나무가 서 있었던 곳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무가 있었던 자리에 표지판 알림글이 쓰여 있었다.

영등포구 당산동 시민 여러분께
도시개발 차원에서 이곳에 10여 년간 심어져 있던 버드나무를 어제 일자로 퇴거하였습니다.
소음 및 통행에 불편을 드려 구민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리며, 차후 47번, 128번, 118번 버스가 통행하는 버스 정류장이 설치되오니 구민 여러분들의 이해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0000년 0월 0일 영등포 구청장


엄마 대로 불편하니까 잘려버렸구나...

버드나무가 있던 자리는 움푹 패어 있었다.

이가 빠져버린 입안 같다.

얼마나 아팠을까...

친구가 보여준 작은 물웅덩이는 앞으로 이곳에, 네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가 되는 거였구나. 네가 뽑혀나간 자리는  스 정류장이 들어서고 의자가 놓일 꺼다.

언젠간 나도 그 버스를 타는 중학생이 되겠지..

네가 내게 말 걸어주듯 나도 네게 말 걸어 줄께.


초여름 바람이 비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연초록 길게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바람을 타고 내게 인사한다.

안녕? 오늘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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