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가방, 우산, 물통, 보조가방....
엘리베이터 1층을 누르고 서서히 닫히는 문을 봤다.
' 꼭 학교 가는 날 아침에 비가 온담.
3교시 체육시간에 비가 오면 좋은데. '
가을 운동회 연습 때문에 거의 매일 운동장에서 뒹군다.
흙투성이가 되도록 연습이 끝나면 점심시간 급식이 입안에서 꺼끌 거리는 느낌이다.
범이는 좋겠다. 오늘도 집에서 놀겠지?
장난감을 거실에 다 꺼내 놓고 놀다가, 간식도 먹고, 엄마랑 책도 읽을 거야. 그림도 그리고.
아빠가 회사 갔다 오면 범이는 또 아빠랑 놀겠지.
오늘은 어떤 장난감을 사가지고 올까?
내가 말한 인형 드레스 안 까먹고 사 올까?
흐음.... 공룡 인형만 안 사 오면 돼.
1103호 아줌마가 엘레베이터 문 앞에 서 있다.
" 연이 학교 가니? 아휴... 비 오는데 짐이 왜 그리 많니. 조심히 잘 다녀와."
나는 아줌마한테 "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주택가 쪽으로 걸어갔다.
비 오는 날이라 개들이 안 나와 있었다.
개들도 비 오는 날엔 집에서 노는데...
항상 가는 길이지만 비 오고 눈 오는 날은 멀게 느껴진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내 옆으로 파란색 우산이 다가왔다.
" 어? 너 이 동네 살아?"
깜짝 놀라 파랑 우산을 보았다.
같은 반 완석이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전학 온 아이.
" 어? 응. 저기 유원아파트."
" 그렇구나. 나도."
그때 뒤에서 , "야! 조완석!" 하고 부른다.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완식이다.
" 어! 너도 이 동네야?"
완석이가 완식이에게 물었다.
" 아니. 엄마 심부름 때문에 아빠한테 전해 줄 께 있어서. 저기 저 회사에서 아빠 일하셔. 그거 전해 주고 가는 길.. 그런데 연이 너도 이 동네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기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교실 안에서만 봤던 애들이 여기 있는 게 흔한 아침 풍경이 아니라 어색했다.
난 항상 혼자 아침에 학교에 갔으니까.
뭔가 이상하면서도 재밌다.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고 세 개의 우산이 걷기 시작했다.
" 완식이 너 디아블로 하냐?"
" 난 슈팅 좋아해. 롤 플레이도 가끔 하고."
남자애들은 항상 게임 이야기이다.
게임이 왜 재밌을까?
두 사람은 서로의 정보를 나누는데 열심이다.
걷다 보니 어느새 나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학교 정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 어? 연이 뭐 해? 같이 가자. 넌 게임 안 하지."
햇볕에 거의 갈색으로 탄 완식이가 내게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 거 같더라. 쉬는 시간에도 책만 읽고. 그럼 뭐 하는 게 재밌어? 독서?"
나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큰 완석이가 물었다.
" 재밌는 건... 잡지나 사진 모아서 스케치북에 붙이는 거. 예쁜 그림이나 재밌는 기사도. 스크랩하는 거 좋아해.
그 옆에 그림도 내 맘대로 그리고. 씰도 붙이고, 마카로 장식도 하고"
두 아이는 열심히 듣고 있었다.
완식이가 언제 한번 보여달라고 했다.
완석이는 " 오... 우리 누나도 그런 거 좋아해. 그런데 내가 만지면 막 화내." 하며 쳐다보았다.
나는 완석이 얘기 들으면서 동생 범이 생각이 났다.
" 아직 어리잖아. 누나가 좀 보여주면 어때서?"
" 안 된단 말이야. 아직 레이스 붙인 면이 덜 말랐는데. 범이가 잡아 당기면 어떡해. 찢어버린단 말이야?!"
" 누나, 보여주세요.... 해봐 범아. "
" 그래도 싫어."
억울한지 범이는 앙앙 울며 엄마 품으로 달려갔다.
그런 동생이 미웠다.
완석이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애도 범이처럼 엄마한테 달려가서 울었을까?
완석이가 부끄러운 듯 자기 머리 뒤통수를 긁적이며 " 아니.. 그렇다고." 하고 얼버무렸다.
학교 정문에 들어가 서둘러 5학년 계단 입구로 향했다.
학교 입학하고 처음이었다.
할머니, 엄마 말고 다른 사람과 등교를 하는 거.
오늘은 왠지 학교 가는 길이 싫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