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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a Oct 30. 2024

학교 가자

#4. 이야기 넷, 엄마도 아프다

아침 되었는데 엄마가 누워만 있다.

아빠가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내가 좋아하는 컵에 부어주셨다.

나도 할 줄 알지만 기분이 좋다. 


" 병원에 혼자 갈 수 있겠어? 어쩌지.... 오늘 손님이 외국에서 와 중간에 못 빠져나오는데. "

" 몰라. 끄응... 어떡하든 해 봐야지."

말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어 보았다.

" 엄마 아파?"

" 엄마 등에 뭐가 났어.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 밤새 열나고... 아빠 회사 갔다 올 때까지 말 잘 듣고 엄마 잘 도와줘. 알았지?"


오늘은 5교시까지만 있으니까 빨리 학교 갔다 하고 집을 나섰다.

엄마는 아프면서 나한테는 왜 말을 안 할까.

나도 이제 고학년인데.

설거지도 할 줄 알고, 핫케익도 잘 만들고, 빨래도 잘 개는데...

어떡하지. 엄마가 아파서...

기분이 무겁다.


아파트 정문 입구에 완석이와 중학생 같아 보이는 사람이 같이 서있다.

완석이가 " 안녕, 지금 학교가?" 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교복 잘 어울리는 하얀 얼굴에 중학생 언니가 나를 쳐다보았다. 완석이 만큼 키가 크다.

" 누구? 친구야? 요 녀석 벌써 여친 생겼네."

얼굴도 예쁘고 머리가 짧은데 멋졌다.

완석이가 얼굴이 빨개져서  그 언니의 팔을 손으로 툭 쳤다.

" 이... 너!"

" 안녕하세요. 완석이랑 같은 반이에요."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 응. 그래. 완석이 같은 반 친구, 다음에 또 봐." 하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 참, 이름이 뭐랬지?"  갑자기 뒤돌아 언니가 묻자,

" 연이! 야, 너 빨리 학교 가! " 하고 완석이가 소리쳤다.

언니는 바이바이 손짓하며 사라졌다.


" 어휴... 맨날 저래. "

완석이가 나보다 먼저 걸어 갔다.

발짝 뒤떨어져 걷는데 엄마 생각에 점점 걱정이 되었다.

횡단보도에 다다르자 약국 아줌마가 문 여는 모습이 보였다.

맞다! 병원! 약국 앞에 무슨 병원 같은 건물이 있었지.  가로수가 높게 자라 병원 3층까지 뻗어 있었다. 건물 꼭대기에 '제일종합병원'이라는 초록색 십자가와 간판이 보였다.

" 저거다!"

학교 끝나면 엄마랑 가야겠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 뭐가?"

완석이가 물었다.

" 아! 응. 엄마가 아파서. 저기 병원이 보여!"

" 어? 많이 아프셔?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려서부터 계속 일하러 나가. 아빠는 경찰서 서장님이라 거의 집에 안 계셔서 누나랑 항상 아침에 같이 준비해.

너무 걱정하지 마. 곧 나아지실 거야.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성당에서 수녀님이 그랬어. 하나님은 아프고 병든 자를 돌보신다고. "

완석이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 졌다.

엄마 걱정이 조금 덜해졌다.

" 정말... 그러면 좋겠는데."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거실에 앉아 있었다.

" 엄마, 많이 아파?"

엄마는 나를 보며 응.. 하고 힘없이 말했다.

" 병원은?'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 있잖아, 학교 앞에 제일병원이라고 있는데.

아침에 학교 갈 때 보니까 종합병원이라고 쓰여 있는 거 봤거든?

범이 할머니한테 맡기고, 엄마 나랑 같이 가자. "


엄만  내 얼굴을 보더니 눈주위가 붉어지며  눈물을 흘렸다.

"어? 엄마 왜 울어? 병원 무서워? 괜찮아. 내가 옆에 있을."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다.

너무 많이 아파 그런가 보다.

범이는 할머니에게 맡기고 우리는 서둘러 병원을 향해 나갔다.

매일 아침 가는 등굣길이  오후에 그것도  엄마와 걸어가는 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빨리 걸을 수 없어 손을 꼭 붙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입학하고 내내 학교 가기 싫다고 매일 울어 엄마가 내손을 붙잡고 가던 그 길인데...


1학년  담임선생엄마한테 그랬단다.

"교사 생활 30년에 이런 애는 처음 봅니다."라고.

얼르고 달래도 교실  책상에만 앉으면 엄마가 죽도록 보고 싶었다.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 냄새가 나는 손수건이 내 손에 쥐어져서 더 보고 싶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아 탈진 상태가 돼 버려 담임 선생님이 양호실에 데리고 가 누였다.

엄마 대신 할머니가 양호실에 나를 데리러 오시고,

그날 저녁 아빠한테 크게 혼났다.

아니 맞았다. 아빠는 내 엉덩이를 대나무로 만든 자로 때리며 말했다.

" 학교에 공부하라고 보냈더니 맨날 울고만 있음 어떡해!"

엄마는 아빠의 대나무 자를 뺏으며 말했다.

" 연이가 무섭다잖아요. 무섭다는 애를 때리면 더 겁이 나잖아. 왜, 뭐가 무서운지를 모르잖아!"

아빠, 엄마가 나 때문에 싸우다니...

내가 조금만 참으면 모두가 싸우지 않고 화내지 않을 텐데...

나는 그때 두려움이라는 검은 보자기가 나를 덮고 있음을 알았다.

이걸 벗으면 나도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작은 불빛 같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언젠가 TV에서 엄마 새가 날지 못하는 아기 새를 둥지 밖으로 날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아기새는 날 줄 모르는데,

세상이 무서운 줄 모르는데.

그래도 아기새는 작은 날개로 열심히 파딱 거리며 날았다.

나도... 그 아기 새 처럼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수 있어!


훌쩍거리며 내가 말했다.

" 아빠... 내일부터.... 혼자.. 학교 가서... 울지 않고. 공부할께요. 용기 내서 해 볼께."

아빠, 엄마는 순간 싸움을 멈췄다.

" 미안하다. 연아. 아빠가 다시는 화 안낼께."

하고 나를 큰 두 팔로 안아주셨다.


내 옆을 보았다.

엄마는 내 손을 꼬옥 쥐 앞을 보며 걸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담당 선생님 안 계신다 했다.

예약을 하셔야 하고 추천 편지인가 뭔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하였다.

나는 엄마가 지금 많이 아프니까 빨리 좀 봐달라 했다.

그러자 전화로 뭐라 확인하더니 잠깐 기다리시라고 한 후 , 간호사 같은 분이 휠체어를 가지고 우리 쪽으로 왔다.

엄마와 나는 응급처치실이라는 데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와 이야기하고 상태를 살피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응급실 안에 들어온 나는 너무 랐다.

내가 다니던 병원과는 다른 로봇 팔 같은 기계와 은색으로 반짝이는 기구들, 그리고 소독약 냄새, 이상한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 환자 분, 보호자가 안 오셔서...

일단 조직 검사하고 부분 마취한 후 염증 부위를 제거하겠습니다.

담당 전문의 선생님이 퇴근하셔서 다른 분이 봐주실 거예요. 그런데, 따님은...?

, 엄마 수술 할 동안 밖에서 기다릴 수 있어? 엄마 옆에 있어도 돼"

난 말없이 고개를 저었.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입고 온 웃옷을 꼭 끌어안고 응급처치실 밖으로 나갔다. 엄마 옷에서 엄마냄새가 났다.

눈물이 났다.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같이 있을껄 그랬어...


한참 지나 담당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엄마를 보니 또 눈물이 나왔다.

" 많이 놀랐지? 엄마가 등에 염증이란 게 났는데 지금 그 부분을 도려냈어. 엄마가 저 주사 다 맞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돌아가면 돼.

악성은 아닌 거 같아요. 

어머님, 너무 많이 참으셨네.  심한 상태가 되면 쇼크올 수있어요.

아프시면 빨리 병원에 셔야 합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엄마 당분간 목욕 못하니까 많이 도와드려.

장하네. 초등학생이 엄마를 모시고 응급실에 오고. 착하다."

의사 선생님은 파란 수술복 위에 걸친 하얀 가운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을 하나 건네주셨다.


엄마가 주사를 다 맞을 때까지 옆에 의자에 앉아 조용히 엄마를 바라보았다.

얼굴색이 전처럼 예쁘다.

푸르스름하던  아픈 얼굴이 아침과 달리 편안해 보였다.


엄마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연아 사탕 먹어도 돼. 엄마 주사 다 맞을 때까지 거기 앉아 먹고 있어. "

난 아무것도 못 먹었을 엄마가 걱정돼  선생님이 준 막대사탕을 까서 엄마 입에 넣어 주었다.

엄마는 주사 바늘이 안 꽂힌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 엄마가 딸 잘 낳았네." 라며 미소 지어 주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저녁 시간인데 벌써 어둑해져 있었다. 약국에 들러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받고 나오는데 약사 아줌마가 내게 말했다.

" 역시 딸은 있어야 해. 엄마한테 얼마나 든든한 친구니. 길바닥에서 울던 꼬맹이가 이렇게 컸어. " 하며 어린이 비타민제를 내게 주셨다.

에? 저를 아세요? 하는 얼굴로 아줌마를 쳐다봤다.

" 너 유명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 쳐, 너네 엄마가 네 가방 땅에 내 던졌잖아. 엄마가 얼마나 속상했겠니. 그런 아이가  이리 컸어! 아이들은 자기가 알아서 큰다더니. "

약사 아줌마가 웃었다.


" 낼모레 중학생 되는데요."

라며, 엄마 웃는다.


이젠 엄마의 아픔이 조금씩 사라져 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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