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자
#1. 이야기 하나, 버드나무의 눈물
학교 가기가 싫다.
매일 아침 나는 슬프다.
" 엄마! 오늘은 집에 있으면 안 돼?"
" 안돼! 이담에 커서 바보 될 거야?"
아직 유치원도 안 들어간 남동생 돌보느라 엄마는 항상 바쁘다.
등 떠밀려 혼자서 등굣길에 나섰다.
내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인형들이 벌써 보고 싶다.
이대로 돌아가 인형놀이 하고 싶다.....
침대 누워서 책 읽고 뒹굴뒹굴 놀고 싶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서 한참 걷다 보면 주택가가 나온다.
누렁이, 얼룩이, 검둥이 개들이 꼬리를 흔들거나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눈을 마주치지 말자. 보면 내게 오니까.
제네들은 묶여 있지만.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주택에 살 때였다.
키우던 개가 남동생의 손가락을 물어 아기 손이 피가 철철 났었다.
할머니는 그 개의 코를 신발로 마구 때렸다.
세 살배기 동생은 울지 않았는데 옆에 있던 내가 엉엉 울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나는 개 든 고양이든 동물의 털의 감촉과 물컹이는 살이 무서웠다.
언제나 이를 악 물고 고개를 숙이며 그 앞을 통과해야만 했다.
정말 싫다. 이 길이...
조금 더 걷다 보면 커다란 회사건물이 보인다.
회색 벽에 큰 창문이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여기부터는 안전하다.
길바닥도 울퉁불퉁하지 않고 나를 쫓아올 고양이도 개도 안 보인다.
작은 나의 한숨이 바람 소리에 섞여버렸다.
가로수가 예쁘게 일렬로 서서 내게 말을 건넨다.
" 안녕? 오늘은 아침에 뭐 먹었어?"
" 토스트랑 우유."
" 오늘은 기분이 어때?"
제일 나이 많은 은행나무가 말한다.
" 숙제는 다 했니?"
내 얼굴보다 더 큰 잎으로 치장한 플라타너스가 묻는다.
" 어제는 비였네...."
주룩주룩 젖은 긴 머리 버드나무가 속삭인다.
"그랬어?"
올려다보는데 빗물이 흐드러진 버드나무 머릿결을 타고 내 눈 속에 들어갔다.
"아야!" 고개를 떨궜다.
내 발아래 맑은 물웅덩이가 보였다. 마치 작은 호수같이 펼쳐 있었다.
어? 언제 이런 게 생겼지?
눈물로 자국의 얼룩진 내 얼굴이 물에 반사되어 보인다.
가까이 가까이 물로 다가갔다.
엄마가 신발 더럽히지 말라했으니까.
조심... 조심...
물이 너무 맑다. 희한하다.
땅바닥 색깔, 버드나무의 초록잎까지 선명하다.
물안에 깊은 구멍이 보인다.
축 처진 버드나무 머리카락도 보인다.
그 안에 보이는 이상한 사람들, 건물들.
그 안에 들어가는 작은 사닥다리가 보인다.
꿈이 아닌데?
물안에 보이는 작은 세상에 놀라 숨죽이고 보았다.
"얘! 그러다가 신발 젖어!"
지나가던 회사원 아저씨가 소리쳤다.
'앗! 학교!'
지각하면 방과 후 청소 시킨다고 그랬지.
서둘러서 학교로 향했다.
횡단보도 건너 약국 앞을 지나쳤다.
그런데 방금 물속에 보이는 것들... 뭐였지?
학교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그날은 학교에서 안 울었다.
엄마 보고 싶다고 한 번도 안 울었다.
집에 돌아갈 때 그 물웅덩이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방과 후 버드나무 앞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아침의 작은 호수 같은 물 웅덩이가 반정도 작아졌다. 물이 거의 없다.
구멍 속 사닥다리는?
물 안이 캄캄하다.
" 아... 모두 집에 들어갔네."
엄마가 오늘은 미술학원 가야 하니까 빨리 집에 오라고 했기 때문에, 할 수없이 포기했다.
내일은 물속 안 사람들을 볼 수 있을까?
뭐라고 인사하지?
다음날 아침,
햇빛이 눈이 부시다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엄마가 나를 쳐다본다.
"오늘 아침밥 뭐야?"
엄마는 눈이 동그레 지며, " 어...? 시리얼 먹을래? 아님 김 말아서 밥 먹을까?"
" 아무거나 빨리 먹을 수 있는 거."
" 어? 학교? 맞다 ! 우리 연이 학교 갈 시간이지!" 하며 엄마가 환하게 웃었다.
빠르게 세수를 하고 후다닥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주택가 개들 따위 안중에 없다.
뒤에서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버드나무... 버드나무...
버드나무 앞으로 달려갔다.
버드나무가 초여름의 바람 냄새를 풍기며 머리를 늘어뜨렸다.
" 오늘은 왜 이리 빨리 왔니?" 하면서 긴 머리를 젖힌다.
슈르르 슈르르..
버드나무 머리의 아래를 보았다.
오늘은 그 문이 열렸을까?
그런데, 물웅덩이가 안 보인다. 어제 보았던 작은 호수가...
" 어.... 없어. 어디로 사라졌지? 여기, 여기 있던 물웅덩이 어디로 간 거야?"
버드나무가 아무 말 없이 긴 머리를 나풀거린다.
"문이 없어졌어."
바람에 뛰어오느라 송골송골 맺힌 콧등의 땀이 시원하다.
버드나무가 말했다.
" 나는 이제 여기 없어."
" 무슨 소리야?"
" 그래서 슬퍼서.... 밤새 울었더니 물웅덩이가 된 거야."
그럼 그 물웅덩이가 눈물이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때 저쪽에서 아저씨들이 서너 명 걸어온다.
" 어이! 이 쪽? 좀 더? 오케이!"
이상한 도구와 긴 줄 같은 도구로 무엇인가 재고 있다.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학교로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