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엘리아의 일기

너를 좋아하는 이유 100가지

by Elia

학기말이 기간이 가까워질수록 도서관은 24 시간 열려 있었다. 며칠 씩 밤새며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로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추운 기숙사 방은 개별룸이었지만 남자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어린 룸메이트들 때문에 도서실로 피난 왔지만 역시나 자리가 없었다.

교내 커피숍 앉았다.


논문 심사가 끝나고 박사 과정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네 이번 논문, 교수님이 좋다고.. 혹시.. 지방대 강사 자리 하나 있는데 너 어떠냐고 묻던데.

캐나다에 유학 갈 예정이라고 했어. 생각 바뀌면 전화 한 번 드려봐."


지방대 시간 강사 자리 시간과 자비가 더 든다.

기회는 여러 번 있지만 이미 대사관 인터뷰가 끝난 상태였다.

내게 맞는 자리는 어디이고 무얼 찾아다니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답이 안 보이는 문제집을 끌어안고 있는 것 같았다.

배움과 교편의 수지타산을 계산하는 것이 대학원생의 버릇이 되버렸다.



" 안녕! 뭐 하세요?"

멍하니 앉아 있는데 어느새 히로가 옆에 앉아 있었다.

" 언제 왔어? 밥은?"

" 엘리아는 항상 밥이네. 도서관에 자리 없지?

가자. 내가 좋은 자리 알아."

학생회관을 지나 인문관 강의실이 하나가 비어있었다.

넓은 강의실은 중앙 난방이지만 한기가 느껴졌다.

이해하기가 어려우면 외우는 수 밖에....

단시간에 집중하기에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 춥지 않아? 배고프지? 다운타운 베트남 레스토랑 어때?"

8시 인문대 중앙난방이 꺼지기 때문에 정리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좀 떨어진 책상이지만 서로의 작은 목소리는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히로, 내가 왜 좋아?"


생뚱맞은 나의 질문.

무슨 용기인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에 히로 하얀 얼굴이 귀까지 빨개졌다.

"음.... 잘 봐."

히로가 강단 앞에 나가 보드에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내가 엘리아를 좋아하는 이유 100가지]
1. 웃는 미소가 아름답다.
2. 똑똑하다
3. 착하다
4. 귀엽다.... 1번과 비슷하지만 다름
5. 옷을 잘 입는다.
6. 엉덩이가 우크라이나 여인처럼 크다
7. 건강함
8. 요리를 잘한다고 소문남
9. 재밌는 사람이다
10. 정직하고
...


칠판은 절반이상 채워져 갔다.

나중엔 글로 쓰기가 힘든지 만화를 그려대기 시작했다.

내 얼굴이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내가 칠판 채워 가고 있었다.


"내가 엘리야를 좋아하는....!"


누가 들어오는 것도 몰랐다.

강의실 뒷문에서 진이 히로의 칠판 글씨를 큰 소리로 읽어대기 시작했다.


"오호! 니들? 6번 엉덩이가 큰 우크라니.."

깜짝 놀란 히로가 서둘러 지웠지만 칠판의 반도 못 지우고, 마른 몸으로 가렸지만 무리였다.

히로와 같은 전공 단짝인 진이 초등학생들처럼 장난치며 웃는 것을 처음 보았다.


또 한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세실리아.

나와 같은 대학 후배였고 외국 경험이 많았다. 굳이 이 시골에 왜 왔을까. 한국인이 적은 지역이지만 소문은 끝이 없었다. 본인 말로는 미국 어학연수 중간에 한국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해 트라우마로 한국인이 적은 곳으로 왔다고 했다. 친구도 일본인이 많고 자기소개는 항상 영어와 일어를 섞어했다.


내게 인사도 없이 세실리아는 표정 없이 칠판만 응시하고 있었다. 가방을 든 채로 보드를 보고 있다가 순간 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과 히로를 보고 미소 짓는다.

"진! 나도 써줘. 저렇게 칠판에 "

진은 생각이 잘 안 난다며 밥 먹으러 가자며 히로를 등을 밀기 시작했다.

네 명은 그렇게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히로는 엘리아와 한차로

진은 세실리아와 한차로.


이름은 'Asian Restaurant '이지만 베트남 요리만 파는 레스토랑이다.

매니저처럼 보이는 아시아계 남자가 ,

" 오! 오늘은 여자 친구들하고 같이 왔냐!?" 하며 반겼다.

히로가 얼굴에 웃음을 띠며

" 오랜만이네요." 하자,

"어이, 형제! 좀 많이 먹어! 그래야 힘을 쓰지!"

하면서 타투가 새겨진 근육 붙은 자신의 팔뚝을 팡팡 친다.

넷이서 웃으며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세실리아가 뒤따라 들어왔다.

"언니, 요즘 통 못 보내. 히로하고 잘되고 있나 봐?"

시작했구나. 이 아이....

" 너랑 시간이 잘 안 맞으니까."

어느새 화장을 고치며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말했다.

" 히로가 만든 우동 먹어 봤어? 그렇게 맛있다며?"

유도질문인가.

" 아직... 히로가 요리도 하나 보네?"

" 어머 , 벌써 차 시동 걸었나? 나가자."


기분이 이상했다.

보고싶지 않는 캐스팅의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 보고 싶다.

짜증난다 이런 드라마는...

이 묘한 감정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