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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Oct 17. 2023

#16 회사원이 됐지만 취미가 사라진 세 가지 이유

입사 후, 본의 아니게 전북 전주로 발령이 났다. 연고도 없는 타지로 발령받는 것이 영 꺼림칙했지만 타지에 살아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을 듯해서 그냥 수락했다. 처음 1~2년만 있으면 다시 서울로 보내주겠다던 회사의 말은 매년 달라지더니 결국 4년 넘게 전주에서 지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전주에서 지내면서 좋았던 날들도 많았지만 취미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영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이유로는 쉽게 돈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되는 돈을 급여로 받으니 처음에는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한 달 치 월급으로 잘만 쪼개어 쓰면 몇 달도 버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돈은 금세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전주로 발령받으면서 나는 회사로부터 어떠한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월세부터 서울까지의 교통비 또한 지원받지 못했다. 월세와 생활비, 매주 서울로 올라가는 비용까지 치르고 나면 생각보다 남는 돈이 없었다. 매달 부모님께 용돈도 보내드렸어야 했다. 더군다나 월급 풍차 돌리기니 26주 적금이니 고금리 예금이니 이곳저곳에서 월급을 그냥 두지 말고 차곡차곡 모으라는 이야기에 무작정 적금을 파 돈을 묻기도 했다. 그러니 어째 아르바이트했던 때보다 통장잔고가 더 적었다. 처음부터 신용카드 쓰는 건 또 싫었기 때문에 그냥 아껴 썼다. 그러니 빠듯한 타지생활에 비싼 맥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방은 마트에서 산 필라이트로 가득했고, 퇴근 후 집에서 과자에 벗 삼아 이로 저녁을 대신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정말 외로웠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 한복판에 떨어져서 지내는 건 생각보다 매우 고역이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원룸, 불러도 대답 없는 그 공간에서의 삶은 지낸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입사 초기부터 호남지역 대장급 임원한테 찍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이미지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엄한 소리 몇 마디 했다고 의기소침해지는 내가 영업사원으로 적합하지 않다나 뭐라나. 그가 했던 ‘엄한 소리’도 내가 군대를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그러는 거냐는 꼰대의 훈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나중에 선배들한테 들어보니 사무실에는 ‘영 이상한 신입사원 한 명이 오니 조심하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윗선에서 만든 프레임으로 내리 찍히는 것. 직장 내 괴롭힘이나 다름없는 처사였음에도 그때의 나는 참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직장생활이 보람차고 즐거울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전혀 엇나가는 생활에 나는 처음부터 지치고 말았다. 돈은 돈대로 못 버는 느낌이고,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어려움을 토로할 상대도 없고. 그러니 나는 서울 친구들과의 소통을 위해 늘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단절의 상황에서 누군가와 간절히 이어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게임을 했다. 다시 원룸으로 돌아가야 될 시간이 되어 음성채팅을 끄고, 컴퓨터를 종료하고, 깜깜해진 밤거리를 뚫고 나오면 원룸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맥주를 마시는 나의 소중한 취미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세 번째 이유로는 맥주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 전주에는 경리단길이나 이태원 같은 곳이 없었다. 크래프트 맥주를 먹고 싶으면 서울로 올라가야만 했다. 신상 맥주가 수입이 되었다는 소식이 나오거나, 수입사에서 개최하는 이벤트,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여는 다양한 행사들은 종종 평일 저녁에 열리곤 했다. 서울에서 근무했었다면 퇴근하고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환경에 나는 속으로 분노하곤 했다.


분노. 아쉬워하면 될 걸 왜 나는 분노까지 했을까? 또 그 망할 경쟁심리와 질투심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서울에도 안 살고 돈은 돈대로 빠듯하고 아는 사람은 없고. 기어코는 이제 맥주를 접겠다고 다짐하며 온갖 소식통을 전부 차단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맥주와 나는 이제 정말 끝이라고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차라리 지방 근무를 무르고 다시 취업을 준비해서 서울에서 다녔다면 어땠을까? 타지생활 하면서 드는 비용은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계산해 보아도 월 150만 원씩 1년 1,800만 원이 연봉에서 깎이는 일인데, 나는 왜 이걸 그냥 묻고 다녔을까.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어렵고 힘든 초년생의 고통을 누군가와 나누며 이겨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여러모로 화나는 순간이 있더라도 오늘 퇴근하면 맥주 행사에 참여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무엇이 나의 꿈이었는지 망각해버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꿈은 돈에 손쉽게 지배당한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 무엇이 꿈이었는지 쉽게 망각해 버리기 쉽다. 온 에너지를 돈 버는 데 집중하고, 보상심리로 꿈과는 먼 어떤 다른 종류의 활동을 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 한 차원 더 높은 취미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내 믿음은 그렇게 산산조각 나버리게 되었고, 그렇게 맥주와 나는 또다시 멀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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