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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Oct 19. 2023

#18 꿈을 찾아 외국살이를 결심하다

일탈은 점점 커져갔다. 고민 끝에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더 나이 들기 전에 외국으로 나가 살아보면 어떨까?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술도 많이 마셔보고’


아내와 나는 9년째 맞이하는 작년 가을에 결혼했다. 10년 차 연인에서 부부로 새로 시작하는 시점에 불현듯 파격제안을 해버린 것이다. 신혼여행으로 유럽을 처음 다녀오고 나서 외국에서 생활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일까. 대학시절 돈이 없어 못 가보았던 그 좋다던 유럽을 막상 가보고 나니 그곳은 정말 새로운 세상이었다. 신혼여행으로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마요르카 이렇게 다녀왔는데,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술이 쌌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쌌다. 어떤 와인은 2유로면 샀다. 한국에 비해 위스키는 거의 30% 이상 저렴했고, 맥주는 음료수 사듯이 사도 괜찮을 정도였다. 더 놀라운 점은, 이렇게 머나먼 타지에 새로이 와서도 새로운 술을 찾아다니고 사 마실 궁리나 하는 걸 보아 나는 정말 술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아내 또한 어마어마한 애주가이자 미식가이기 때문에 나의 파격적인 제안을 의외로 쉽게 받아들였다. 본격적으로 출산과 육아를 준비하기 전에 우리 둘만의 추억을 좀 더 쌓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회사와 헤어질 결심은 이미 충분히 했고 부업을 하며 항체를 키웠으니 ‘평생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 볼 차례였다. 어쨌든 술은 확실히 좋아하는구나 확신은 얻었으니 술과 관련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경험을 늘리자는 데 중지를 모았다.


‘술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는 건 어때?


‘아직 락다운이 다 안 풀렸잖아. 어떤 나라는 아직 입국을 막던걸’


‘뭐 어때. 관광객도 덜 할 텐데 더 좋은 거 아닐까?’


이 계획을 준비할 때인 22년 12월은 아직 코로나 제제가 전 세계적으로 유효하던 시기였다. 나는 모험을 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귀한 시간을 냈는데 여행이 막힐 것을 걱정했다. 


그보다도 세계여행을 하려면 퇴직을 하거나 휴직을 해야 했다. 나야 그만두면 그만이었지만 공무원인 아내가 그만둔다고 하면 양가 부모님들의 큰 걱정을 살 것만 같았다. 아내가 그만두지 않고 휴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오- 찾아보니 공무원은 유학휴직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정말 매우 까다로운 바늘구멍을 통과해야만 했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있었다.


그런데 유학휴직을 하려면 어느 한 국가에 장기정착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여행은 포기하고 나라 하나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여러 술이 모여있는 나라. 술을 배워볼 수 있고 영어도 함께 배울 수 있는 곳. 비교적 안전한 곳. 영국 밖에 없었다.


우리는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나는 우선 퇴사통보부터 했다. 팀장은 이직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직이 아닌 꿈을 찾아 퇴직한다고 답변했다. 그렇게 퇴사 선언하고 나니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 뒤면 나는 더 이상 직장인 신분이 아니게 된다. 매일 붐비는 지하철에 녹아드는 걸 시작으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하루를 보내는 일상들 - 예를 들면 아침마다 하던 팀 회의도,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팀원들과 팀장 뒷담 까던 일도, 회사 동기와의 점심도, 종종 먹던 혼밥의 소중함도, 외근 중 땡땡이치는 쾌감도, 퇴근길 술 한 잔도, 모두 정지다. 


평소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잘했던 아내는 다행히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 비교적 잘 풀리게 되었다. 이 바늘구멍을 뚫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운이 정말 잘 따랐다.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만두고 외국 나가서 살겠다고 했을 때 늘 단골질문이 뒤따랐다. 집이 잘 사는 거 아니냐고.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동안 모은 전재산과 심지어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털 작정으로 이 짧고도 긴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어떤 사람은 ‘너는 젊어서 노니 늙어서 고생할 것’이라며 부럽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마치 신탁의 예언 앞에 무릎 꿇은 오이디푸스처럼, 앞으로의 불투명한 미래가 훤히 보이는데도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 쳐야만 하는 운명이 안타까워서였으리라.


그래, 솔직히 인생 뭐 있나. 한 번 사는 인생,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즐기고 싶은 거 화끈하게 즐기며 살아보자는 욜로의 모토와 닮았다는 거 백번 인정한다. ‘여태 나름대로 고생했고 더 이상 젊음을 허비하기 싫으니 한 번 내 멋대로 살아보겠다’는 치기 어린 방황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브렉시트 이후 환율이 가장 높은 시기에 영국살이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나는 새로운 모험을 한 것에 결코 후회는 없다. 그런데도 왜 단행하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로 간절하게 나의 꿈을 다시 찾아보고 싶었다.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비록 맥주를 업으로 삼지는 못했지만 취미마저 포기하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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