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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개봉“

1964 빌딩

by hyogeun

“선물 개봉” - 1964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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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은 언제나 궁금증투성이다. 직원이 아닌 이상, 일반인 출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옥을 경험하는 건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개성을 건물에 녹아내려 노력한 흔적은 건물 외관에서 티가 난다. 그래서 그런 외관을 가진 사옥 앞을 지나갈 때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이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지만, 돌아오는 건 경비원의 손사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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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인공 도시의 표본이기에, 격자형으로 구획된 공간에서 자신을 어필하는 높은 건물을 보고 있으면, 보석 진열대를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이런 건물 대부분은 일반인의 출입이 쉽지 않아, 우리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쉬우니, 강남은 언제나 세련된 포장지로 감싸진 선물 상자의 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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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중, 성수에서 가로수길로 향하는 4212번 버스를 타고 강남대로를 지나갈 때면, 유난히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다. 단아한 형태지만, 자세히 보면 어긋나게 배치된 외관이 범상치 않다. 이곳도 언제나 그렇듯 경비원이 손사래를 치며 나를 밀어냈지만, 이번에는 선물을 개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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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빌딩’에서 진행하는 전시 덕에 사옥 로비까지 경험할 수 있었고, 덕분에 건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건물의 외관이 사람의 첫인상과 같다면, 건물의 로비를 경험하는 건 상대방의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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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의 로비는 집의 응접실과 같아서 손님을 대접하는 공간인 동시에 주인장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응접실은 손님과 주인장이 만나는 공간이기 이전에, 집안의 방 중 하나이기 때문에 주인장의 취향이 다분히 묻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방을 구성하는 가구, 인테리어를 통해 집 전체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고, 이는 사옥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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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석으로 깔린 바닥에 군더더기 없이 칠해진 흰 벽, 단조로움에 지루해질 법한 공간은 천장과 복층 구성, 곳곳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디테일이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계단식 좌석으로 강남대로를 내려다볼 수 있게 하는가 하면, 2층엔 여러 좌석과 서가를 배치하고 각 공간의 높이를 달리해 수직적으로 다양한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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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과 창조성을 지향하는 남양 유업의 사옥인 만큼, 1964빌딩은 기능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사옥 건물의 특징을 탈피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은 일반적인 모습을 유지하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지루함을 외관과 로비를 통해 해결했다. 그래서 이곳은 남양유업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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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포장지 속 내용물이 과연 나에게 쓸모 있는 물건일지 아니면, 내 돈 주고 사고 싶지 않은 쓸모 없는 물건일지는 포장지를 뜯지 전엔 모르지만, 다행히 이번에 뜯어낸 상자 속 내용물은 나에게 좋은 경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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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원오원아키텍츠 ( @oneoone.archive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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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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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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