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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드러내어 얻어낸 인상”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by hyogeun

“비우고 드러내어 얻어낸 인상” -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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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물을 사람에 비유하곤 한다. 규모가 큰 건물을 의인화하면서 건물이 주는 부담을 덜어내기 위함이며, 공간을 분석하는데 조금은 더 쉬운 방법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함이다. 건물이 가진 입면과 재료, 디테일, 땅에 대응하는 자세를 보며 어떤 건 차갑고 정 없는 사람, 어떤 건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 또 어떤 건 싸이코 같아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건물까지. 다양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건물은 다양한 사람과 마주하며 대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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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로를 걸어가다 보면 4-5층 규모의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을 보게 된다. 남산타워 주변으로 걸린 고도 제한 때문이다. 도로의 폭에 비해 그렇게 높지 않은 건물들이지만, 열린 공간이라곤 도로와 인도밖에 없어, 이 일대 또한 다른 서울 동네 못지않게 삭막하다. 그래서 거리를 걸어 다니다 땅의 절반 이상이 비어있는 건물에 시선이 끌리는 건, 답답한 시야를 뻥 뚫어줘서가 아닐까. 이곳은 바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다.


철제로 틀을 만들어 건물의 경계를 한정하지만, 절반 이상이 비어있다. 그래서 횡단보도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한남동 일대가 액자처럼 걸린다. 옹기종기 모여 산의 능선을 그대로 따라 올라가는 건물의 군집과 그 끝엔 성당이 자리하여 동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나만 즐길 수 없으니, 옆으로 비켜서 함께 즐기자고 손짓하는 것 같다.


손짓에 이끌려 건물로 들어가면 땅에 한번 놀라고, 1층 구성에 한 번 더 놀란다. 보통의 건물은 평탄화 작업을 한다. 땅을 고르게 가꾸어 건물이 반듯한 평지 위에 앉히게 한다. 그래야 설계와 시공에 용이하고 이용에도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기존의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남산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내리막길은 자연스레 사람들을 1층으로 이끈다. 대부분 평지만을 만나게 되는 건축에서 경사진 바닥은 적절한 긴장과 즐거움을 준다. 철제로 된 건물로 인해 이곳의 첫인상은 차갑지만, 곳곳에 보이는 배려와 센스로 건물의 매력은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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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핵심 공간은 2, 3층이다. 평소에는 접하지 못하는 희귀한 바이닐이 모여있는 두 층은 천장 없이 이어져 있어 넣은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2층에는 턴테이블이 있어 직접 청음 해볼 수 있고, 3층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다양한 시대와 국적의 노래를 찾아볼 수 있다.


희귀 바이닐과 중요한 자료가 저장되어있어 건물은 현대카드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는 폐쇄적 시스템을 가진다. 하지만 통유리로 입면을 마감해 건물 밖에서도 바라볼 수 있고, 내부에서도 밖을 바라볼 수 있으니, 폐쇄성을 재료를 통해 중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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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유리는 근현대를 대표하는 재료로 산업화의 산물이다. 때문에 재료에서 오는 차가움은 건물의 첫인상 또한 차갑게 만든다. 하지만 땅에 대응하는 자세와 거리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자세,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재료의 선택을 통해 건물은 첫인상과 달리 따뜻하고 센스 넘치는 사람과 같다. 이렇게 건물을 의인화해서 분석하고 경험하다 보면, 조금은 더 공간을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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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소지자 및 DIVE 앱 회원만 입장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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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세지마 가즈요 -> 최문규 + 가아 건축사사무소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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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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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46

화 - 토 : 12:00 - 21:00

일 : 12:00 - 18:00

매주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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