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가져야 할 때”

인포멀 가든

by hyogeun

“의미를 가져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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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유리, 콘크리트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타난 ‘국제주의 양식’은 건축에 많은 폐해를 불러왔다. 대량 생산한 재료처럼 무한정 복제된 듯 지어진 건물은 도시마다 비슷한 경관을 만들었다. 무의미한 공간 속 보이지 않는 도시의 정체성은 도시를 단색화하였고 우리네 삶을 지루하고 삭막하게 만들었다.


이런 폐해에 반하여 생겨난 ‘지역주의 건축’은 환경에 융합하고 장소를 존중하며 전통을 고려하여 자연적 요소를 중시한다. 지역에 잘 어울리는 재료와 색을 사용한 지역주의 건축은 사용자에게 편안함을 준다. 여기서 파생된 ‘비판적 지역주의 건축’은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진보와 순수성, 낯설게 하기를 통해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긍정적인 측면과 지역주의가 추구한 장소성, 역사성도 함께 고려하여 사용자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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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울산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면, 심심찮게 보이는 건물 군집이 있다. 파란 파형 강판 지붕에 베이지색 샌드위치 판넬로 구성된 저장창고와 축사다. 최소한의 재료와 구조를 사용해 만들어진 시설물은 농사와 축산을 업으로 하는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물로,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


‘인포멀가든’은 태백산맥 끝자락에 위치하여 저장창고와 축사의 형태를 재해석하여 신선한 자극을 주는 ‘비판적 지역주의’ 건축물이다. 욕심보다는 겸손이, 화려함보다는 담백함이 어울리는 장소적 특성을 살려 장식 없는 건물을 대지 위에 앉혔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땅에 순응하지는 않았다. 건물이 자리한 땅은 경작지였지만 산자락으로 복원한 땅이었고 그런 땅을 다시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 각형 강관으로 틀을 잡고 경사면 위에 건물을 떠받친다. 멀리서는 장방형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이 대지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건물을 강조한다. 빨갛게 칠한 강관의 열주와 붉은 주황빛을 내뿜는 내장재인 MDF를 사용해 자연의 색과 대비되도록 했다. 익숙한 재료와 공법에서 대비를 통해 건물과 장소를 낯설게 바라보도록 한다. 전형적인 모더니즘 건축이 보여주는 행보다.


지형을 이용하여 경사지는 자연의 영역으로, 평지는 인간의 영역으로 구분하여 추가적인 담 설치 없이 공간을 나눈다. 내부의 창은 강관의 간격에 맞게 뚫려 능선을 그대로 가져오니 장소적 특성도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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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역주의 건축은 모더니즘 건축이 만들어낸 도시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좋은 것은 그대로 가져가되, 잘못된 것은 고쳐 성장하는 건축이다. 천편일률적인 도시는 인프라로만 주변 도시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했다.


울산은 인프라 투자에 박한 도시로 그 결과가 인구 유출 비율로 나타난다. 인구 유출률이 가장 높은 울산은 탈 울산인을 막기 위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수억을 투자하지만, 정작 만들어내는 건 기존과 다르지 않은 아파트, 상업건물, 공공시설일 뿐이다. 당연히 건물보다 인프라, 각종 정책이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도시가 눈에 띄는 차별화로 매력을 가지려면 장소성과 역사성을 고려한 건축물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 인포멀가든이 지역성과 장소성을 토대로 그곳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선보여 깊은 산속에 있음에도 사람들을 끌어모으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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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 @apparat.c.architect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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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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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두서면 구량차리로 374

매일 10:00 - 18:00 (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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