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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Apr 25. 2023

“반듯한 정장과 백발노인”

은평구립도서관

“반듯한 정장과 백발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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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를 소개하면서 나는 건물을 사람에게 비유한다고 했다. 큰 규모의 건물을 의인화하여 건물이 주는 부담을 덜어내고 공간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여 해석하기 위함이다. 건물 입면과 재료, 디테일, 땅에 대응하는 자세를 보며 어떤 건 따뜻한 사람으로, 어떤 건 차가운 사람으로, 혹은 차가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츤데레였다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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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내역에서 내려 굽어진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북한산자락에 자리한 도서관이 눈에 띈다. 신전이 생각나는 ‘은평구립도서관’이다. 경사에 맞춰 단을 만든 건물은 단마다 형태가 반복된다. 3번 반복되다 육중한 두 건물 덩어리가 추가되어 형태에 마침표를 찍으며, 동시에 좌우대칭 구조를 강조한다.


대칭성과 반복성은 형태에 안정감을 주지만, 규모가 커지면 위엄을 가진다. 더군다나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노출콘크리트가 건물의 주재료로 사용되었으니, 건물의 첫인상은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한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이다. 하지만 건물을 오르내리고 내부를 경험하다 보면 그러한 생각은 금세 바뀐다.


대지 경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 건물의 창도 서쪽을 향한다. 서향은 태양 빛이 내부로 깊숙이 침투하기에 책의 손상을 막아야 하는 도서관에서는 반가운 빛이 아니다. 은평구립도서관은 응석대를 두어 열람실 내부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을 차단한다. 응석대는 단마다 반복되어 각 층 옥상에 쉼터가 되어, 사람들을 포근히 안아준다.


건물 중심에는 반영정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물이 채워지면 자연스레 하늘이 물에 투영되는 공간이다. 중심으로 향하는 공간 배치 덕에 푸른 하늘, 움직이는 구름, 변하는 빛과 색을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다. 고개를 숙인 채 책만 바라보는 독자를 배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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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이미지 속 묻어나는 배려심, 내부는 시간이 지나 오래된 인테리어와 책이 풍기는 내음으로 친근한 이미지까지 연상시킨다. 거기에 건물이 앉히면서 단절될 뻔한 산책로를 다리를 설치해 이어주기까지 하니, 건물은 왠지 백발의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 ‘업’의 할아버지나 앤 해서웨이가 주연으로 나오는 ‘인턴’ 속 ‘벤 휘태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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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곽재환 건축가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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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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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은평구 통일로78가길 13-84

평일 : 09:00 - 22:00

주말 : 09: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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