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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Jul 28. 2023

“일상을 비일상으로 대피시키다”

대방청소년문화의집

“일상을 비일상으로 대피시키다” - 대방청소년문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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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06시 40분경, 서울 전역에 울려 퍼진 사이렌은 굳게 닫힌 창문을 뚫고 들어와 지역민을 전부 깨웠다. 창문을 열자 들려오는 두 번째 방송. 어린이, 노약자를 우선 대피하라 명령한다. 안내 방송이 끝나자 열리고 닫히는 이웃집 현관문들. 불안은 극대화된다. 부리나케 밖으로 나간 거리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인과 통화하는 사람, 벌어질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한 보따리 짐을 들고 대피소로 향하는 사람, 나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상황 파악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행동은 달랐지만, 표정은 불안으로 같았다.


새벽녘부터 울린 경계경보는 다행히 오발령이었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휴전국의 불안전성을 일깨웠다. 동시에 대피소라는 공간 자체에 주목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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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반 시설인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는 도시 기능 유지에 필요한 물리적 시설을 의미한다. 도로, 공원, 학교, 공공청사가 그렇다. 대피소는 도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공간이 아니다. 어디서도 대피소를 별개의 공간, 기반 시설로 분류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를 성립하는 전제 조건이 ‘평화’가 기반이 되어 ‘문명’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게다가 재난 위기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이제는 대피소가 분단 국가를 넘어 전 도시에 필수로 갖추어져야 하는 기반 시설 중 하나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울에는 이미 많은 대피 시설이 있다. 지하철과 공공청사가 대표적이다. 이곳들은 위치와 건물의 성격으로 대피소의 호칭을 가지지만, 주목적은 아니다. 벙커는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지하에 매설되어 오롯이 대피소 역할만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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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청소년문화의집’은 군용 벙커를 리모델링했다. 군 기능을 상실하면서 와인 창고, 공원 관리용 자재 창고로 쓰이다가 오늘날 변화를 맞이한다. 벙커 주변은 10여 개의 학교가 자리한다. 그만큼 청소년을 위한 공간 수요가 넘친다. 벙커가 특수한 환경임을 고려하면, 이곳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적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벙커는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스포츠, 창작활동, 교육과 휴식을 지원하는 청소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간은 크게 세 층으로 나뉜다. 1층은 스포츠 벙커로 VR 존과 스포츠 존, 2층은 미래 벙커로 청소년의 꿈을 지원하는 미디어, 멀티, 스포츠 코트, 3층은 유스 벙커로 휴식 공간이 있다. 휴식 공간 한편에는 식생을 가꿔 공간의 삭막함을 덜어낸다. 기존의 층을 허물고 다락을 매단 덕분에 세 층을 이어주는 입체 광장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강관과 조명을 가로로 길게 설치하여 대방산 지하 공간을 시원하고 답답하지 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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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는 필요하지만, 사용되지 않을 땐 방치된다. 기반 시설과 군 시설이라는 대형공간은 평소 경험하기 힘든 스케일과 자체의 구조미를 그대로 드러낸다. 일반적인 공간과 차별화된 공간 경험,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대피시키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며 성장하는 발판이, 우리에게는 분단국가임을 상기시키며 평화를 위해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은 대피소의 공간 활용방안과 주변 도시와 상생하는 좋은 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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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jo_jinman_architect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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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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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여의대방로36길 71

매일 09:00 - 21: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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