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미술관
“모호하여 조화되는 경계” - 이응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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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화백은 동양화의 전통적 필묵을 활용하여 동서양의 예술을 넘나드는 거장이다. 캔버스와 재료가 조화되지 않음으로 양식적 분열을 꾀하는 서양의 콜라주와 달리, 고암의 작품은 뭉쳐진 재료들이 화면에 골고루 덮여 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특징은 ‘안양교도소에서 가장 춥고 괴롭던 날, 자화상’에서 발묵 기법을 통해 여백과 형태와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에서, ’문자 추상‘의 명확히 읽히지 않는 형태로 보는 이로 하여금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물리적 형태로 경계 짓지만, 모호함으로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건축의 특성을 적절히 활용한 ’이응노 미술관‘은 그래서 그의 작품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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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둘레나 대지 경계선, 정해진 구역을 둘러쌓은 연속한 벽을 담이라 부른다. 한국 전통 건축의 담은 궁궐을 제외하고는 사람 키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방어적 개념의 울타리와 달리, 경계를 구분 짓는 용도로만 사용된다.
담과 건물 배치로 형성된 빈 곳인 마당은 그래서 더욱 모호하다. 한옥은 여러 채로 나뉘어 틈을 만들고, 담은 경계만 구분 지으며 시선을 차단하지 않으니, 시각적으로 마당이 넓어보인다. 서양의 정원처럼 식생을 심기보다 마사토를 깔아 평평한 흙바닥을 유지한다. 비어있는 마당은 대청마루와 연계되어 무대가 되기도, 위계가 바뀌어 관람석이 되는가 하면, 대청마루에 오른 이들에게 마당과 담장은 여백이 되어 가까운 풍경을 가리고 먼 산과 하늘을 집중하게 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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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공원에서 시작하여 자연 마당을 지나 정부대전청사까지 이어지는 공원은 좌우 대칭이다. 그 축에 오른쪽으로 한 블록 비켜선 대전엑스포시민광장이 있는 부지 또한 좌우대칭이다. 해당 부지에 들어선 건물의 종류와 배치 방식은 상징성을 지닌다. 미술관 또한 가로 벽과 세로 벽이 정갈하게 공간을 구획하며 주변 맥락을 따른다. 순환 동선의 방향을 잡는 벽과 평행하게 놓인 길은 사람을 자연스럽게 내부로 끌어들인다. 내부 전시 공간의 벽은 이동식 벽으로 계획되어 여러 크기, 형태의 행사, 전시를 수용하는 가변성을 지닌다. 공원 부지의 장소성을 잊지 않고 주변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부를 경계 짓던 벽은 밖으로 튀어나와 담이 되고 자연 일부를 담는다.
모호하여 중의적 성격을 띠는 그의 작품처럼, 이러한 특성은 지붕에서도 표현된다. 격자형 지붕은 건물 자체를 커 보이도록 부각해 주지만, 정작 차양막 역할은 하지 않는다. 소나무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 빛을 투과하고 가벼운 느낌에 존재감이 사라지기도 한다. 건물의 형태를 구분 짓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게 작동한다. 주변과 조화되기도, 많은 건물 중에서 눈에 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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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로랑 보두엥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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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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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둔산대로 157
매일 10:00 - 19:00 (월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