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우스
“구 씨네 집들이” - 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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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는 편이다. 중림창고와 터무니처럼 단어가 생겨난 근원을 살펴보면 대상과 단어가 쓰이는 상황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 ‘구하우스’는 ‘구’와 ‘하우스’가 결합했다. 넓은 주차장이며 전시장 입구, 복도, 구조가 드러나는 천장은 거칠다. 하우스라 이름 붙이기엔 어색하지만, 공간과 어우러진 작품을 감상해 보면, ‘구 씨네 집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 사진첩, 서재에 꽂힌 책은 상대방의 취향과 철학을 고스란히 담는다.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구정순 대표가 수집해 온 5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는 본건물은 조각, 설치, 영상, 가구, 하물며 책까지 방대한 포맷의 작품이 공간 곳곳에 스며있다. 이곳이 곧 구 대표의 플레이리스트이자, 사진첩, 서재나 다름없다.
취향을 담고 있다고 해서 이름에 하우스가 붙었다고 하기엔 아쉽다. 미술관은 ‘일상으로부터의 예술’을 주제로 일상과 유리되지 않는 현대 미술의 개념과 정수를 보여주고자 했다. 예술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일상에서 편안하게 누릴 수 있도록 공간 포맷을 ‘집’으로 설정한 이유다. 각 실은 다이닝 룸, 리빙 룸과 같은 명칭으로 불리며, 공간이 흰 벽으로 칠해져 있지 않고, 직각, 예각, 둔각으로 서로 다른 공간 형태를 가진다. 다락 방의 경우 천장을 기울여 공간과 명칭이 어우러지게 디자인했다. 획일적인 전시장과 달라 공간 자체만으로 미술관의 경험은 다채롭다. 거기에 취향이 묻어있는 작품과 만나 전시장은 구하우스만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전시 경험을 집으로 느끼게 하는 건 무심하게 놓인 가구 배치도 한몫한다. 명작 가구라 한들, 일부는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되는 가구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라이브러리 룸에서 작품이지만 무심하게 놓인 소파와 테이블, 카펫, 조명이 그러하고, 손님 방인 장 프루베 룸에서 장 프루베가 1932년 프랑스 낭시에 대학교 70개 기숙사 방을 위해 디자인했던 침대, 책상, 암체어, 선반을 고스란히 재현한 모습이 그렇다. 고독하게 작품을 전시하는 다른 전시장과 다르다.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는 건물은 모두 마을을 등지고 문호천을 향해 열려있다. 순환 동선인 본관을 전부 감상하고 나면 본관의 마당을 지나 별관에 간다. 미술관을 둘러싼 자연은 작품과 조화되고 관객은 별관으로 향하면서 이를 함께 즐긴다. 외진 곳에 있다 보니, 방문객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는다. 구 씨의 집들이를 더욱 프라이빗하게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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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매스 스터디스 ( @mass_studies)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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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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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평일 : 13:00 - 17:00 (월, 화 휴무)
주말 : 10:30 -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