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geun Nov 24. 2023

“기억을 담아, 오래도록 그곳에 남아”

성림목장

“기억을 담아, 오래도록 그곳에 남아”

-

*도슨트 투어 신청을 통한 사전 방문

*11월 말 오픈 예정

-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한 방에는 켜켜이 쌓인 나만의 추억이 가득하다. 색바랜 벽지, 삐그덕거리는 서랍장과 침대는 시간의 길이를 보여주고, 앨범 속 어린 시절과 초등학생 때 모았던 스티커, 밀려 썼던 일기장, 숨기고 싶던 성적표는 그 순간을 간직한다. 잊혀졌지만, 들춰보면 영화처럼 그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위해 추억은 잠시 뒤로하고 남길 건 남기면서 비울 건 비운다. 그럴 때면, 어리거나 성숙한 지금이나 나에게 질문한다.


‘무엇을 버리고 남길 거야?‘


기억의 켜가 많아 가치 있는 건 남기고, 그렇지 않은 건 버린다. 남겨진 물건은 버려진 물건을 대신하여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새로 들인 물건은 나름대로 주변과 어울리며 앞으로의 기억을 담는다.

-

지금의 ‘성림목장’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1971년 금정산 장군봉 줄기에 자리 잡은 사배 마을 위, 3만여 평의 부지에 19개의 건물을 지었다. 목축업에 필요했던 건물이었지만, 쓰임을 다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건물을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주변 풍경을 가리는 건물은 철거하고 삶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던 축사 건물과 사료, 건초를 보관하던 사일로는 남겼다. 때 묻은 벽돌과 목재 지붕, 오묘한 빛깔을 내는 녹슨 알루미늄은 지난 세월을 보여준다. 비워진 자리에 새로이 들어선 카페는 나지막이 축사 건물 뒤에 앉혀 이 시대의 새로운 기억을 채울 준비를 하고 있다.


불그스름한 산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와 은빛의 지붕이 겹쳐 보인다. 잠시 걷히는 구름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반사되어 자신을 밝히기도 한다. 주변과 조화되기도, 어필하기도 하는 건물에 이끌려 오르막을 오르면, 날카로운 박공지붕과 마주한다. 차가움이 먼저 다가오지만, 부드럽게 휘어진 건물 덩어리에 상쇄되고, 나무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며 다락을 형성하는 내부에 아늑함을 느끼며 긴장이 풀린다. 창문 프레임과 겹친 기둥은 존재감을 잃고, 산의 절경은 내부로 쏟아진다. 뒷산에서 흔히 보았던 풍경과 다르다. 주인장의 추억이 담긴 공간과 겹쳐 보이니,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의 풍경이다.


휘어진 공간 끝에는 대나무 숲이 배경으로 깔리고 옹기종기 모여 모닥불을 피우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멧돼지를 잡아 구워 먹던 공간은 오늘날 고구마를 구워 먹고, 버스킹을 하며, 불멍을 통해 같은 추억을 쌓는 장소다.

-

모든 공간이 그렇듯, 성림목장은 언젠가 또다시 새롭게 들일 공간을 위해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해질지 모른다. 분명한 건, 성림목장은 이미 예전 사람들의 기억이 있고, 앞으로 채워질 우리네 기억이 있으니 그 순간이 가까운 미래는 아니지 싶다. 가치 있는 공간의 미래는 걱정보다 설렘으로 가득하다.

-

건축 : PDM partners ( @pdmpartner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경남 양산시 동면 사배 1길 106-9

작가의 이전글 “선택과 집중,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