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하우스 성수 (성수루)
“기억을 간직하는 보호수처럼” - 트리하우스 성수 (성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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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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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여행하면서 여러 마을을 스쳐 갔다. 빠른 속도에 마을 정취까지 느끼지는 못했지만, 저마다 오랜 역사가, 그렇지 않더라도 마을 주민들의 수많은 추억이 담겨 있을 거로 생각했다. 보호수와 그 밑에 깔린 평상을 보면서. 큰 키에 풍성히 뻗은 나뭇가지와 끌어안아도 두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두꺼운 몸통. 보호수답게 거센 바람이 부는 제주에서 나무 아래는 평온해 보였다. 그런 강인함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사람들을 모아 추억을 담으며, 이를 상기할 회상 장치가 되어준다. 동시에 앞으로의 기억을 담을 저장고가 된다.
많은 공간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성수동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하기에 무엇이든 스며들 여지가 있지만, 단숨에 나의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상황은 씁쓸함만 감돌 뿐이다. 회상 장치가 사라진 추억은 잊혀지기 쉽기에, 성수동은 왠지 모를 차가움도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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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하우스 성수’에 자라난 한 쌍의 나무는 차가움에 저항하는 듯했다. 7층 천장에 설치된 각파이프는 성수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다. 이는 나뭇가지가 되고 뭉치면서 몸통이 된다. 그리고 그 끝은 땅에 뿌리 내린다. 다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철제 파이프는 점차 나무 각재로 변하여 8층에서 나무로 뒤덮인 공간을 형성한다. 겹겹이 쌓은 합판은 그 폭을 달리하며 나이테를, 천장에 설치된 기다란 나무 막대기들은 서로 교차하며 나뭇가지를 형상화한다.
나무 몸통에는 [Looking into Time] 전시의 주인공, 김덕한( @kimdeokhan_studio ) 작가의 작업 도구와 위스키 브랜드 발베니( @thebalvenie ) 그리고 오크통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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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베이스로 작업하는 김덕한 작가는 반복적으로 옻칠을 쌓아 올린 후 갈아내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선보인다. 기억과 경험에서 추출한 색이 역순으로 보이는 그의 작품은 과거의 흔적이 현재에도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스키는 오크통에 술을 숙성시켜 만든다. 위스키를 시음이 아닌 시향한다고 표현하는 건, 오크통의 숙성도에 따라 나무와 조화되는 정도가 달라져, 위스키의 풍미를 결정하는 색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발베니는 하나의 오크통에서만 술을 숙성시켜 왔던 기존의 제조 방식을 깨고, 마지막 공정에서 다른 오크통으로 술을 옮겨 숙성시키는 ‘Cask Finish’ 방식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겹겹이 쌓인 위스키의 향은 우리네 감각을 일깨우는 예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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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연관된 두 작품과 이를 담아내는 한 쌍의 나무. 사람들은 8자 동선을 만들며 나무 주위로 움직이고 모인다. 비록 보호수처럼 든든한 모습은 아니지만, 전시품을 비추고 영원할 것 같은 단단함에 굳건한 자태를 뽐낸다.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다. 전시가 끝나면 다른 물건들로 채워지겠지만, 상관없다. 기존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흰 벽의 전시실과 달리, 이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우리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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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위스키 잔을 들고 외친다. 앞날을 위해. 이날을 회상하며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좋은 건강을 기원하는 말로.
슬란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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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12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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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 모포시스 ( @morphosisarchitect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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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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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수일로4가길7 7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