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북촌로 15 헌법재판소 옆
"옛집을 되살리는 법"
우리의 전통가옥은 나무를 주 구조로 사용하는 목조 건축물이다. 수평 부재인 나무 기둥과 수직 부재인 나무 보를 기본 골격으로 형태를 잡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 마무리한다. 기둥, 보, 지붕이 서로 얽혀 단단하게 결합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이 중 하나만 부실해도 금방 무너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나무는 관리가 소홀하면 썩어 없어지는 재료이기에, 무너져 흔적이 사라진 전통가옥을 원래대로 완벽하게 복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 땅과 바로 맞닿는 부분인 기초는 나무를 사용하지 않아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땅을 파고 자갈을 넣어 '적심'을 만들고 그 위에 '초석'을 얹어 기초를 완성한다. 비교적 쉽게 사라지지 않는 적심과 초석은 유구의 크기와 높이, 이곳에 거주했던 사람의 신분까지 유추해볼 수 있게 해 준다.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별관 증축을 위해 땅을 파다 발견된 유구는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를 위해 사위인 '구민화'에게 지어준 집인 '능성위궁'이었고, 그 자리에 '한성고등여학교'와 '창덕여고'가 들어서면서 창덕여고 부속건물의 하부콘크리트 구조물도 남아있었다. 즉 이 자리는 200여 년의 역사를 압축한 땅이자 이 유구는 서로 다른 시대의 구조물이 만들어낸 퇴적된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귀한 자료였다.
이것을 우리가 흔히 아는 울타리를 쳐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적심과 초석을 가지고 원래 '능성위궁'의 형태와 크기를 가늠하고 없어진 기초는 한옥의 기본 단위인 '칸'을 이용해 사라진 기초의 위치를 추측했다. 여기에 평면적으로 유구를 관찰하는 것을 넘어 입체적으로 사람들이 '능성위궁'의 본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했는데, 집을 추상화한 모습을 얹어 관람객이 그때의 원래 모습을 완성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었다. 내부는 흰색 띠를 둘러 한옥의 '칸'을 확인할 수 있으며, 기초인 주춧돌로 만들어진 틈 사이로 발견된 유구를 그대로 관찰할 수 있다. 여기에 근대 콘크리트 구조물이 집의 중심에 있어 퇴적된 시간의 흔적 또한 찾을 수 있다.
출토된 유구를 어떻게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보여줄지는 우리의 몫이다. 그 방법은 다양하고 정답도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여준 보존의 방식은 목조건축물로 사라진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방법으로서 가장 알맞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형태를 유지하며 거의 모든 부분이 남아있는 유럽의 석조건축물과 달리, 우리네 전통 가옥은 그렇지 않으니깐.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서울 종로구 북촌로 15 헌법재판소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