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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Jan 31. 2022

"짓고 짓다"

사유원

<집을 짓다.>

우리는 집을 짓는다고 말한다. 짓는다는 건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든다는 의미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의식주를 만드는 것인 만큼, '짓다'는 엄청난 노력과 정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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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어떤 재료와 어떤 구성으로 어떻게 하면 거주자의 삶을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때 집이 앉혀질 땅을 골라야 하는데, 평지는 벼농사를 위해 땅을 내어주어야 했으니, 집은 양지바른 구릉에 앉힐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땅이 주는 메시지를 읽고 해석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고 어려워, 집은 짓는데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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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주는 메시지를 읽고 해석하는 일이 중요했던 이유는 선조들에게 자연은 건들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형태를 얻기 위해 땅을 밀어버리고 자연을 건드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네 건축은 돌이 있으면 피하고 시냇물이 있으면 동을 나눠 배치했으며, 언덕이 가팔라 집을 짓지 못하면 짓지 않았다. 대지를 이용하지 않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자연은 두렵고 경외의 대상으로 삼아 최대한 자연에 순응하는 건축을 해왔다. 따라서 자연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정성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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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우리나라는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집을 짓기보다는 무작위로 건물을 땅에 꽂았다. 포크로 피자 도우를 찌르듯이 무작위로 건물을 배치한 결과 어딜 가나 똑같은 구성과 배치를 가진 아파트와 빌라, 상가건물이 우리 주변을 채웠다. 이런 근본 없는 건물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올 때, '사유원'이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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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되돌아보고 사유하기 위해 산을 거닐며 마주하는 공간들은 하나같이 자연에 순응한다. 건물의 크기가 크든 작든, 길이가 길든 짧든, 이 자리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지와 하나 되어 사람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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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위치를 고려하고 언덕의 단 차를 고려하고 그곳에 도달했을 때 보일 자연의 모습을 고려한다. 그런 고심 끝에 지어진 건물과 뚫린 창문은 오직 그곳의 대지와 하나 될 때,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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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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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짓다.>
 짓는다는 뜻에는 밥, 옷, 집도 있지만, 이름도 짓는다고 표현한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대상을 부르기 위함이고 대상을 부른다는 것은 그것을 알기 위함이며 알기 위함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성과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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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름을 짓는 이유는 그 사람의 이름처럼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좋은 뜻을 가진 한자를 찾아 조합해보고 해석해보기도 하며, 음을 읽으며 발음은 괜찮은지 확인도 해본다. 그런 정성이 깃든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남들과 차별화된 고유의 '나'라는 정체성이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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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마찬가지다. 선조들은 집을 짓고 난 후, 집의 이름인 '당호'도 함께 지어 현판에 새겨 걸었다. 당호는 주인장의 삶이 집의 이름처럼 되길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지은 것이다. 그렇게 지어진 당호는 오늘날 건물을 보고 'A동', 'B동', 혹은 '101동', '102동'이라 하는 것보다 훨씬 정겹고 품격있으며 당호가 있는 집은 나만을 위한 공간처럼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그런지 정 없이 번호로 사람을 부르듯, 우리네 집을 부르는 오늘날의 행동이 더더욱 주거 공간을 잠만 자는 공간으로,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전락 시켜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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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유원에는 건물마다, 길마다 이름이 지어져 있다. 치허문, 소대, 소요헌, 풍설기천년, 사담, 명정, 내심낙원, 첨단, 오당/와사, 별유동천, 초하루길, 비나리길, 딱따구리길 등. 저마다 다른 한자, 한글로 조합된 이름이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 채 사람들을 맞이한다. 지도를 보며, 팻말을 보며, 건물 앞에 새겨진 현판을 보며 이름을 부르고 뜻을 찾아보는 과정은 사유하러 온 사람들이 집주인의 뜻에 따라 공간을 이용하겠다는 암묵적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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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에 적힌 뜻에 따라 공간마다 다른 경험을 하고 나온 ‘사유인’들은 근본 없는 도시 건물이 조여온 압박감에 벗어나 제대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고 가야 하는지. 바쁜 현대사회에 치여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성찰을 이곳에서 맘껏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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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진 집과 지어진 이름이 하나 되어 땅에 앉힐 때, 그 시너지는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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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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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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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사전 예약을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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