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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Feb 03. 2022

“땅과 하나 되다”

소요헌

‘사유인’의 눈높이에서 건물의 진입로는 주차장 같다. 점점 높아지는 콘크리트 벽은 주변의 시야를 가리고, 사람들을 어두운 동굴 속으로 인도한다. 이미 입구에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내부에서 경험하는 공간은 충격적이다(기대했어도 그 충격은 같았을 것이다). 산봉우리에서 시작해 내려가는 동선과 함께, 높아지는 공간의 높이는 극적이다. 여기에 두 갈래로 나뉘는 복도가 흑과 백의 대비로 또 한 번 충격을 준다. 대낮에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며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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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림길은 천천히 거닐며 사유하러 온 이들에게 선택지를 준다. 밝은 곳을 거닐며 자연과 마주하고 점점 높아지는 공간감에 빠져 한없이 작아진 나를 되돌아보게 할지, 아니면 어두운 복도를 따라가다 마주하는 천창을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곱씹어 보게 할지. 둘 다 나를 사유하게 하지만, 그 방식은 달라 다른 방향에서 나를 사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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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을 꺾거나 늘어뜨려 예상치 못한 경관을 보여주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늘 봐왔던 산과 나무, 하늘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창을 뚫지 않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는 건축가의 선 긋기에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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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건물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어질 건축물이었다. 얼핏 들은 내용으로 정확하진 않지만, 계획안만 남아있던 걸 건축주의 설득으로 건축가가 이곳, 사유원에 '소요헌'을 짓기로 했다고 한다. 당연히 지형과 만나면서 계획안이 일부 수정되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단언컨대 마드리드보다 우리나라 산속에 지어져야 했던 것은 분명하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진 공간에 사람의 발소리만이 정적을 깰 때, 무심코 등장하는 중정과 빛, 조형물과 경치는 우리나라만이 가진 산의 모습을 다시 보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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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하나 되어 건물이 지어지고 그에 걸맞은 이름이 지어져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되는 순간, 그 시너지는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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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그런 시너지를 경험할 수 있는 사유원의 ‘소요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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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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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사전 예약을 통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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