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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Feb 04. 2022

“뱀의 충고”

오당/와사

어릴 적 꽤 인상 깊게 본 동화책이 있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러, 이름과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내용은 이렇다. 하얀 솜털로 뒤덮인 동글동글한 동물이 세상에 태어났다. 팔과 다리는 사람의 피부와 동일하고 코는 뾰족했다. 귀엽게 생긴 모습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지만, 그가 가진 욕심이 지나쳐 신이 그를 벌하였다. 팔과 다리를 없애고, 하얀 털은 징그러운 비늘로, 동그란 몸은 길게, 맑은 눈은 매섭게, 뾰족한 코는 뭉툭하게 바꾸어 우리가 아는 '뱀'으로 변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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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뱀을 워낙에 무서워하고 징그러워했던지라, 뱀의 원래 모습에 놀라면서도 자기 욕심을 이기지 못해 벌 받은 뱀을 보며, 고것 참 쌤통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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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유원에 있는 '오당/와사'가 그 시절 책에서 보았던 뱀을 떠올리게 한다. 형태부터 뱀이다. 기다란 몸과 이리저리 꺾여 땅에 안착한 몸, 바닥과 십자가의 조형물은 뱀의 꼬리와 혀를 떠올리게 하여, 그 모습은 마치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풀숲에 숨어있는 매서운 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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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여기에 있는 뱀도 동화 속 뱀처럼 욕심이 많았나 보다. 닥치는 대로 뭐든지 잡아먹어 사람보다 커진 몸뚱이부터 혼자서 크고 작은 연못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나친 욕심으로 신이 그를 벌하셔서 동그랗고 귀여운 동물을 무서운 뱀으로 바꾸셨나 보다. 솜털은 거칠고 강렬하고 붉은빛은 띄는 코르텐강(산화 강판)으로, 팔과 다리는 당연히 없앴고 동그랗던 몸은 길게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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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 뱀은 책 속의 뱀과 달리, 깊은 반성을 하고 있었다. 연못을 욕심내었지만, 건드리지 않았고,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 여기에 속도 비워내어 자신이 가진 욕심이라곤 하나도 없음을 증명한다. 동화 속 뱀은 용서받지 못했지만, 이곳의 뱀은 언젠가 용서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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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몸속을 거닐며 사유하는 ‘사유인’은 뱀이 주는 교훈을 읽으며 곳곳을 누빈다. 자신의 몸을 찢어 몸속으로 자연의 소리와 빛을 들여, 자연은 경외의 대상임을 깨닫게 한다. 끝에 있는 십자가와 의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휴식하는 인간에게 자연은 인간이 독차지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일깨워준다. 이기적인 인간에게 더 욕심을 부렸다간 신이 우리도 벌할 것이라는 뱀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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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원 곳곳을 누비면서 생각난 게 있다. 용서 받을 거라 생각했던 뱀은 적어도 몇십 년 동안 용서받기엔 글러 먹었다 생각했다. 뱀으로 바뀌고 난 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자연을 독차지하려했던 모습이 보인다. 모과나무를 탐하려 이리저리 누비다 비늘이 벗겨져 그대로 남아있거나(풍설기천년), 산 정상에서 머리만 내어 먹이를 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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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에서 보았던 뱀은 속이 시원했지만, 이곳의 뱀은 불쌍하게 여겨졌다. 벌을 받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이 보였으며 끝내 용서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다. 또 자신과 같이 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존경심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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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부렸다간 큰 화를 부르게 된다는 동화책 속 교훈이 이곳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는 연못과 누워있는 절이라는 뜻을 가진 ‘오당/와사(悟塘/臥寺)’로 이름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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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사(寺)’ 대신 ‘뱀 사(巳)’를 썼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맘껏 이곳을 사유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이게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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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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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사전 예약을 통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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