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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Oct 03. 2021

우울[憂鬱], 그 형벌에 대하여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우울[鬱], 네이버 국어사전은 근심 우, 답답 울 자로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정의가 사실이라면 나는 가벼운 우울증을 겪고 있음이 분명하다. 수개월 전부터 나는 울고 싶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다. 왜 울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더 이상하다. 나 자신을 상세하게 석해보았다.


나는 맨손으로 시작하여 악착같이 여기까지 왔다. '여기'는 이상적인 '상태'이다. 여러 번의 이직 끝에 회사인들이라면 누구나 꿈꿀법한 회사에 취직했고,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나와 아내를 닮은 5살, 100일 아이가 생겼으며 그 비싸다는 서울 하늘 아래 아파트도 샀다. 내 친구들과 동네 이웃들은 교양 있고 격조가 있으며 아내 또한 상냥한 사람이다. 그렇다. 사회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나는 성공한 흙수저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포장지가 아무리 화려하여도 알맹이가 곯아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쩌면 '형벌'일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첫째를 낳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우울증을 호소한 적이 있다. 내가 지방에 있을 때라 오랫동안 주말부부를 했는데, 어머니가 1년 동안 상주하며 첫째봐주셨다. 멀쩡한 사람도 어머니와 있으면 정신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어려운데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승진시험에 미쳐있었다. 한편으로 당신께서어린아이를 1년이나 돌볼 성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그 먼 고향에서 매주 열차를 타고 올라오시는 수고를 한 것이다. 죄송하다.


나는 우울하다는 아내에게 모진 말을 많이도 했다.

"우울? 그게 무슨 말이야... 병원? 병원에 왜가?"

입으로 쏘아낸 화살은 돌고 돌아 나에게로 온 것일까.


행복하게 지내기도 짧은 인생인데, 부정적인 감정에 낭비할 시간과 여유가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어느 시점부터 슬프다, 울고 싶다, 힘들다 라고 생각이 들어서 화들짝 놀라기도 다. (내가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다니... 나는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어야 하는데...) 애써 부정하려고 하지만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최근 10년간 감정이 동요하여 울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감정이 결여되 우는 방법을 잃어버린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우는 것은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다. 그런데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격정적으로 공감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나약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 알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은 어디서 오는가? 왜 나는 스스로 우울하다고 생각하는가? 처음에는 '내 시간이 없다'였다. '에이 애들 아빠가 뭐... 지 시간을 찾고 있어. 회사 다니고 애들하고 놀아주고 하는 거지'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니깐.


내가 '내 시간'을 가지는 사치를 부리면 두 아이 육아전쟁 중인 아내 더 시간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곧 가정의 불화로 직결된다. 가정의 불화는 내 마음을 다시 부정적인 상태로 빠뜨린다.


그렇다. 아내의 말처럼 어쩌면 나는 결혼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내 시간 전부를 바쳐서 가족에게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다.


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책임을 다해야 한다. 퇴근하고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둘째 분유도 먹여야 하고 아들과 쉴 새 없이 놀아줘야 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볼 수도 없으며 책을 읽는 것은 아이 동화책 읽어줄 때만 가능하다. 매일 목욕도 시켜야 하고 밥도 먹여야 한다. 출근전 첫째 유치원 등원 시키며 지각을 할까봐 늘 마음을 졸인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일일이 허락을 받고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나의 여유시간은 화장실에 있을 때, 아니면 모두가 잠든 자정 이후 새벽시간에 나의 잠을 깎아 만들 수 밖에 없다. 부족하다. 생각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아빠는 이 모든 것들을 오롯이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빠 될 자격이 없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얼핏 억울하다가도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수긍이 된다.


탈선을 했다. 육아휴직을 냈다. 도저히 회업무와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새로옮긴 부서는 과도한 업무와 책임을 요구했다. 육체와 정신을 좀먹는 '우울'이라는 놈이 계속 찾아왔다. 그렇게 내 회사 커리어는 끝나버렸다. 아마도 육아휴직 낸 남자 간부로 평생 꼬리표가 붙으리라.


자정이 되면 그놈이 불현듯 찾아온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는다. '이건 복에 겨워 나오는 잠꼬대 같은 거야. 다들 그렇게 살아'라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주절거리다 보니 새벽 다섯 시다. 비염이 있는 첫째 코피를 쏟으면서 울고 있고 어린둘째는 맘마 달라고 칭얼거린다. 가야겠다. 아빠 노릇 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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