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가 악기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카레이서에게 레이싱카가 생명과도 같듯, 세일러에게는 좋은 배가 그렇다. 성공적인 세일링을 위해서는 첫째, 좋은 보트를 구입할 것, 둘째, 세일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것, 마지막으로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팀을 꾸릴 것을 이야기한다. 이 세 가지 기본 조건 중에 세일러의 기량에 관한 말이 없는 것은 세일링 기술은 기본 이어서일까, 아니면 보트나 팀워크보다 덜 중요해서 일까.
서로의 바쁜 일정을 조율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을 하는 우리에게 그 시간을 할애해 보트웍을 하는 것은 꽤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트웍은 좋은 세일링을 위한 기본 조건이었기에 우리는 부지런을 떨며 일찍부터 모였다.
보트웍은 세일, 메인 트레블러, 클리트 교체와 같이 새로운 부품을 주문해야 하는 것부터 매직블록과 걸레로 선체를 매끈하게 닦아내고, 사포로 손 샌딩, 바니쉬를 하는 등 조금은 전문적으로 보이는 것부터 단순한 수작업까지 그 범위가 다양했다.
자, 여기서 단순한 수작업 중 하나인 선체를 닦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자. 보이지 않는 먼지를 닦아내지 않고 세일링을 하면 선체 위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우리팀 마스트맨은 몇 번이나 선체밖으로 미끄러져 다리를 물에 담갔고, 그걸 바우맨이 끌어올렸다. 만일 경기 중에 크루가 선체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요트는 돌아가서 크루를 주워(?) 데려와야 한다. 그런데 청소용 매직블럭으로 먼지를 한 겹 벗겨내고 나면 스파이더맨 팔다리를 장착한 것처럼 마찰력이 생겨 미끄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신나는 노동요를 틀고 따라 부르며 힘차게 사포질, 걸레질을 했다.
"요트가 화려해 보였겠지만, 넌 노가다 취미를 선택한 거야."
이미 10년가량 요트를 탄 S가 내게 말했다.
그렇다. 구정물을 양 손에 묻히고, 전동 드릴을 번쩍 들어 선체를 뚫고 있는 우리에게 화려함은 없다. 대신 여자라서, 이런 일을 하기에 내 수준이 너무 높아서 못하는 것도 없다. 사회에서 우리의 위치는 다르다. 기업 임원이기도 하고, 사장이기도 하고,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한창 꾸밀 여대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똑같이 '우리의' 배를 다룬다. 우리는 성공적인 세일링의 마지막 조건인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팀' 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