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을 벗어보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손가락에 여섯 개의 구멍이 생겼다. 세일링을 하는 동안 장갑 안에서 물집이 생겼다가 터졌고, 물이 찼던 피부 껍질이 아예 떨어져 나가 버린 것이다.
새 하이힐을 신고 뒤꿈치에 물집이 생긴 적은 있어도 손바닥에 물집이 잡힌 적은 처음이라, 속살이 드러난 손가락에 알코올 손소독제를 바르고 펄쩍펄쩍 뛰기도 했고, 물집이 한껏 부풀어 오른손으로 요가를 하다가 낄낄대기도 했다.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 올리는 다운독 자세를 하고 있는데 손가락에 잡힌 물집의 쿠션감이 생각보다 훌륭해서, 우연찮게 강아지들의 통통한 발바닥 패드를 느꼈던 것이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서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아침에 일어나니 손가락이 오므려져서 쫙 펼 수 없었던 적도 있다. 그것도 반복되니 익숙해져서, 이제는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다. 연습이 끝나고 돌아오면 바로 습윤 밴드와 3M 종이 반창고로 터진 상처를 감아서 최대한 보호했다. 다음 연습까지 일주일 내에 무조건 상처가 아물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일상생활이 불편해도 재활과 재생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쑤시는 손가락 관절에는 일제 동전파스를 붙이고 다녔다. 친구들이 손가락마다 화려한 반지를 주렁주렁 끼고 다닐 때, 난 반창고를 둘둘 감고 다녔다.
나는 집 트리머이다. 그러니까 시트를 당기고 풀고를 반복하면서 세일의 방향과 각도를 조절한다. 얇은 줄로 바람을 한껏 머금은 큰 세일을 조절해야 하니, 그 줄에 걸리는 힘이 상당하다. 완벽하게 내 피부와 밀착되지 않는 장갑과의 마찰 때문에 손에서 열이 나고 물집이 잡히는 거다.
“굳은살 박이고 물집 터진 피부는 원상복구가 안 돼. 자, 여기 봐봐,”
운동을 많이 하는 남사친은 자기 손을 보여준다.
“아니던데, 굳은살도 사라지던데? 운동 안 하면 사라지는 복근이랑 처지는 엉덩이처럼 말이야.”
그런데 그 친구 손가락 피부의 색과 질감이 균일하지 않긴 하다. 박인 굳은살이 빠지는 것과, 새 살이 돋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건가?
스무 살에는 골프를 열심히 쳤었는데, 골프채가 지나가는 부위의 손가락과 손바닥에 고스란히 굳은살이 박였다. 여대생답게 예쁘게 화장하고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데이트를 나가면, 내 손을 잡을 때마다 깜짝 놀라 굳은살을 확인하는 남자 친구를 보는 게 재미있었다. 클라이밍에 빠져 있을 때는, 암장에서 긁힌 상처, 그러니까 손등, 팔뚝, 다리 곳곳에 연고를 바른 채로 소개팅에 나가서 상대를 황당하게도 했다. 그들이 놀랄때 태연한 척 하는 것을 좋아한 나, 이상한 취향을 가진 것이 맞다.
축구를 하면 종아리에 알이 생기고, 사이클링을 하면 허벅지에 큰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요트를 타면 다리에 멍이 들고 손에 물집 잡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 국가대표 운동선수는 힘들어야 운동이고, 힘들어야 대가가 온다고 했다. 대단한 대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상처에 몸을 사리지 않고 계속해야만 그제서야 운동의 재미가 선물처럼 따라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두렵지 않다.
손이 까지고 아물고를 몇 번 반복하더니 피부가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복싱 선수가 글러브를 끼기 전에 손에 붕대를 감듯이 세일링 전에 반창고를 미리 감는다. 속으로 스스로가 좀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또, 글러브도 (비싼) 세일링 전용으로 바꿨다. 그랬더니 더 이상은 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운동은 장비 빨 이라는 건가.)
이제서야 내 몸이 준비 되었다.
글: Edi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