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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pr 28. 2020

세일링을 잘하기 위해서는




요트는 바람을 동력으로 사용하여 움직이고, 그 바람은 세일로 조절한다. 스피네이커, 제노아, 집과 같은 세일들을 컨트롤하는 사람은 바우맨과 트리머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센 바람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한다.   

오늘은 변풍과 돌풍(gust)이 많은 날이었다. 오늘같이 바람이 센 날에도 폴을 잘 핸들링할 수 있을 만큼 바우맨은 강해야 한다. 스피네이커에 바람을 한껏 품은 채로 폴을 이동시켜(폴 자이빙) 스피네이커의 방향을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트리머는 시트를 이용해서 제노아, 스피네이커, 집 세일을 조절한다. 얇은 줄 하나로 내 키의 몇 배나 되는 세일(메인 12.638㎡, 집과 제노아 11.58㎡ , 스피네이커 41.7㎡)과, 헐(Hull, 선체)의 무게만 1,406kg에 탑승인원 최대 무게 400kg인 요트를 이동시킬 만큼 강한 바람을 핸들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세일을 당길 수 있는 힘이 셀수록 좋다. 그렇지만 고작 80kg 정도의 사람이 세일과 바람의 무게를 견딜 수 없기에 윈치의 도움을 받아 시트를 조절해야 하고, 그마저도 버겁기 때문에 피트맨이 윈치를 활용하여 세일 트리밍을 돕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힘만으로는 세일을 트리밍 할 수 없기에 중요한 것이 타이밍이다.   


가령 태킹을 할 때 한쪽의 시트를 풀어주면서 반대 방향의 시트를 잡아당기는 미묘한 시점을 잘 캐치해야 요트가 깔끔하게 방향 전환을 하고 거리와 바람을 손해 보지 않을 수 있다. 세일링 실력이 미숙한 나는, 시트는 있는 힘껏 (막무가내로) 당길 수는 있겠는데, 그 타이밍을 잡는 것이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 감을 익히기 위해서는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 <모닝 라이트 Morning Light>는 전 세계에서 뽑은 최고 기량의 20대 초반의 세일러 11명으로 구성된 세일링팀의 이야기를 다룬다. 6개월간의 훈련을 거쳐 캘리포니아에서 하와이까지 태평양을 횡단하는 <TransPacific Yacht Race>에 출전하는데, 이들은 최고 기량의 신체와 두뇌로 이루어진 팀인데다가, 월트 디즈니사로부터 훌륭한 요트와 제반 훈련을 지원받은 우승후보이다. 그런데 그들은 경기 막판에, 정말로 거짓말 같이 머리가 희끗한 세일러들이 포함된 삼바파티팀에 승리를 내어주고 만다. 나는 줄곧 선두에 달리던 모닝라이트팀이 결승지점에 거의 다 와서 추월당하는 장면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험이죠”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어떤 젊음과 기술도 시간과 경험을 이길 수는 없다고 말이다.


지금 우리가 타는 요트는 J-24라는 24 피트 원디자인 킬보트(정해진 디자인의 세일보트로 경기를 하고, 먼저 결승점에 도착한 팀이 우승함)이다. 보통 3~5명이 탑승하며 경기에서는 한 보트 승선인원의 무게가 400kg 이하면 된다.     


함께 훈련하는 팀은 지난 몇 년간 합을 맞춰와서인지 정말이지 침착하고, 노련했다. 한 명의 크루라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듯, 아무리 급박하게 요트의 범주를 바꿔야 할 상황이어도, 마지막 한 크루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자기 포지션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통해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리고 정확한, 최상의 타이밍에 동시에 움직이고 최고의 선택을 했다.     


지난 겨울에는 수준이 비슷한, 그러니까 요트조종면허는 있지만 훈련은 처음 해보는 사람들끼리 팀을 이뤄 K-36을 탔었다. 요트 사이즈도 더 컸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탔다. 이때는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함께 시간을 들여 성실하게 실력을 키우는 것이 관건이었다.


반면 지금  J-24는 전현직 요트 선수들과 함께 타고 있는데, 그들의 정교함과 에너지가 주는 안정감과 자극이 굉장하다.  가령, 세일이 바람을 제대로 받아 빠른 속도로 나가며 힐이 걸릴 때면, 실력과 경험이 미천한 아마추어들은 난리가 난다. 당장이라도 캡사이징 되어 물에 빠질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능숙하게 체중을 실어 힐을 잡아내고, 안정적으로 속도를 즐긴다. 그리고 그 속도를 경험해보면, 요트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내가 헤매고 있는 부분을 재빠르게 캐치하여 원포인트 팁을 주고, 조금씩 발전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과하게 칭찬하고 충분히 용기를 북돋워준다. 팀원의 부족한 실력을 향상시켜, 팀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그들로부터 배운다. 나는 내가 속한 조직에서 퍼포먼스를 내지 못하는 팀원을 무시하거나 도려내려 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런 노력을 해왔던가.     

  

실력이 한참 뒤떨어지는 팀원의 입장이 되어 보니,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이 요트팀에 피해가 되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다짐이 그것이다.


다시 한 번 조직 속의 내 모습을 돌아본다. 나는 과연 조직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저렇게 고마워하며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충분히 친절하게,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안내했었는지.             





글: Edi

그림: 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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