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언니 Dec 15. 2019

바람이 보여요?




요트 타기의 시작은 가만히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것이다.     


나의 머리카락이 날리는 방향,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체크하고 뱃머리를 바람의 방향을 향하도록 돌려놓는다. 그리고 범장을 시작한다. 그래야 세일이 배 방향으로 깔끔하게 날려 세일을 붐에 묶기 편하기도 하고, 잘못 옆으로 붐이 날아가서 옆 사람의 머리에 맞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바람이 없는 날의 세일링은 바람이 센 날만큼 쉽지 않다. 바람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 지나가는 길을 찾고 그 바람을 잘 모아서 세일이 힘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이 능숙하지 않으니 멈추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자주, 높고 깊은 하늘 아래 넓고 평평하게 펼쳐진 물 위에 하얀 배를 타고 한참이나 홀로 떠 있는다. 상상의 공간에 놓인 기분이기도 하고, 명상의 상태에 잠긴 편안한 느낌이기도 하다. 그럴 때는 그냥 하늘을 올려다보고, 내 곁을 우아하게 지나가는 오리들을 구경하고, 가끔씩 점프해오는 물고기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여유를 부리곤 한다.     

 

그리고는 정철 작가의 말처럼 돛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을 안는다. 온몸으로 안는다. 남김없이 안는다. 허리가 휠만큼 꽉 안는다. 이런 행동이 배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뜨겁게 끌어안는다. 석유보다 힘센 에너지가 포옹이다. 석탄보다 뜨거운 에너지가 사랑이다.         
                                          - 돛 (정철, <사람 사전>)     


바람이 약할 때는 힘껏 끌어안고, 바람이 셀 때는 여유롭게 흘려보낼 줄 아는 유연한 사람. 자유롭게 품을 수도 놔줄 수도 있는 크고 넓은 사람 말이다.      


30년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대상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서핑에 빠지면 눈뜨자마자 파도를 체크하는 습관이 생긴다고 하던데, 나는 서핑을 좋아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아마도 서핑을 주기적으로 하지 못하고 여름휴가 이벤트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트타기가 주말의 일상이 되었으니, 주중에도 일어나면 바람을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번 주말의 바람에 따라 소중한 하루의, 어쩌면 일주일을 기다려온 즐거움이 좌우되니까.     


바람이 돈다

바람이 끊긴다

바람이 터졌다

바람이 온다     

바람이 고르다


바람은 불기만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요트를 타는 동안 바람은 이렇게나 다양한 옷을 입고 내 곁을 지난다.     


"선생님은 바람이 보이세요?"

"저어~~기 보세요. 보이죠?"


선생님이 먼 곳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정말이지 컬러 스프레이라도 뿌려서 투명인간 같은 바람을 보고 싶다.     


여전히 바람의 흐름을 읽는 것이 어려운 내가 그나마 터득한 노하우는 물결이 흐르는 모양을 멀리 내다보거나 세일이 만들어내는 볼록한 모양을 보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바람이 부는 강도에 따라 내 배의 돛을 점검하는 것. 그것은 죄 없는 바람을 비난하는 것도, 바람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도 아닌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맞게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현실주의자의 태도다.  


요트를 만나지 못했다면, 돛의 움직임 개념이 없었다면, 바람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정여울 작가의 이 문장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요트 덕분에 세상을 보는 렌즈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전 17화 혼자가 좋을까 함께가 좋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