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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Sep 22. 2020

요트를 타고 싶다고요? 배달음식을 끊으세요




“앞에 저건 부이(bouy) 아니니까 그냥 가도 되나요?”
“어어어, 어서 피해, 핸들 꺾어!”
급박한 상황을 지났다.


마리나를 빠져나왔다고 바로 낭만적인 바다 항해가 시작되지 않는다. 근해에는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어망이 있고, 어망이 있다는 표시로 띄워놓는 부이의 종류가 어망의 수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처음 키를 잡던 날, 이 부이는 바다 깊이 깔려있는 자망이라는 의미이고, 이건 장벽 그물,  이건 통발, 이런 식으로 어망의 종류를 공부했어야 했다. 어망의 특징에 따라 요트의 항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트는 어망을 피해야 한다. 생업의 현장이니 훼손하면 안 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요트만 놓고 보더라도 어망이 요트의 밑바닥 킬(배가 전복되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무거운 추라고 생각하면 쉽다.)에 걸리면 전진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체가 전복이 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나 출발 후 처음 한 시간 이상은 세일을 펴고 세일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엔진을 켜고 어망들을 잘 빠져나오는 장애물 피하기 게임 같은 운전을 하게 된다.

그런데 방금 눈앞에 지나간 것은 부이가 아닌 것들이 뭉쳐져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이런 것도 피해야 하나 싶던 찰나, 선장님이 긴급하게 소리치셨던 것이다. 그것들은 바로, 쓰레기 뭉치였다. 마리나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서 만난 쓰레기 뭉치, 그리고 선명하게 보이는 페트병들....

바다에서의 이 상황은 한강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한강에서 요트 경기를 하는데, 바람 길을 읽고 코스를 잡는 것에 더해, 장마에 떠내려 온 쓰레기 더미를 피하는 것까지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고 났더니 그동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해양오염, 바다의 쓰레기 문제를 더 이상 못 본 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겪어보기 전에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지식인이 못되어서 이렇게 직접 보고 충격을 봐야만 눈이 떠진다.) 환경문제에 바짝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요트를 타면서 봤던 쓰레기 뭉치들은 나의 짧은 요트 경력만큼이나 미미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기후변화에 대해 기후학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색하게도 대중들은 무감각하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나처럼 실상을 알지 못해서였기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들을 접하면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 생산량의 반은 일회용으로 버려지는데 어떻게 한번 쓰고 말 것을 분해가 되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가 있죠?” (여성 프리다이버의 테드 강연 중에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바다의 실상은 처참하다. 수면으로 내려가 촬영한 필름을 보니, 수심 1미터까지 기름때와 쓰레기가 뒤엉켜 덩굴손처럼 뻗어있었다. 내가 요트 위에서 봤던 둥둥 떠다니는 페트병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었다. 인류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쳐 이제는 ‘플라스틱기’를 살고 있다는 자조에 달리 반박할 수가 없다.

김초엽의 SF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의 여성 우주인은 1년 반에 걸친 사이보그로의 개조 과정을 마치고 우주로 발사되려던 그 날 아침, 궤도를 이탈해 심해로 유영한다. 플라스틱과 해양오염 덕분에 바다에 관심을 갖고서야 그녀가 우주를 버리고 심해를 선택한 이유를, 그리고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영화로 번 돈을 쏟아부어) ‘딥씨 챌린저’라는 잠수함을 만들어서 심해 탐험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닷속에는 육지 생물의 일곱 배인 약 30만 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는 아직 개척하지 못한 심해의 새로운 생물종을 제외한 수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가보지도 못한 심해가, 발견되지 못한 심해의 생물들이 지구 온도 상승으로 죽을까봐 겁이 난다. 화석연료를 태우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대기층으로 가고 많은 열이 지구에 갇힌다. 대기층에 갇힌 열의 93%를 바다가 흡수하는데, 만일 바다가 열을 흡수하지 못하면 지구 온도는 50도씨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열을 흡수하면 바다의 수온은 상승하고, 따뜻해진 물 때문에 산호초는 백화되며,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한다. 지금의 이 속도라면 심해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내년부터 10년간은 유엔에서 선언한 해양과학 10년(2021~2030)이다. UN에서는 총 여섯 개의 목표를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건강한 바다의 회복과 해양관측 기술의 발달, 이렇게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양 생태계의 회복은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그리고 절대적인 문제이다.


출처 https://www.oceandecade.org/


실은, 세네 시간의 세일링 훈련을 하면서도 우리는 인당 한두 병의 페트병을 들고 요트에 오른다. 훈련이 끝나면 플라스틱 병을 깔끔히 수거하고 라벨까지 꼼꼼히 벗겨내서 분리수거해 버리니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분리수거된 플라스틱이 20%도 재활용이 안된다는 사실은 차마 몰랐다.


무지함은 이게 끝이 아니다. 나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숲에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산을 좋아하고, 산에서 맡는 나무 냄새를 좋아하고,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라며 바위 위에 앉아서 한참이나 호흡을 했더랬다. 사실 가장 많은 산소가 만들어지는 곳은 바다라고 한다. 바다에서 작은 플랑크톤이 번식하며 산소를 배출하는데, 그게 우리가 숨 쉬는 산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제 상황은 조금이나마 파악을 했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집에 있는 플라스틱을 다 내다 버리고 앞으로도 절대 사용하지 않는 삶? 이런 급진적인 사고와 성급한 결심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마트를 한 바퀴만 돌아봐도 왜 그것이 '급진적'인지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나에게 WWF(세계자연기금)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방송인 타일러 라쉬가 힌트를 줬다.

   

환경 문제는 너무 크고, 너무 절박하고 너무 막막하니까 조금이라도 앞으로 갈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한 것도 필요 없다. 다만 깨어 있고 그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게 중요하다.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중에서)


종종 친구가 사다준 테이크 아웃 커피를 받아 마시고, 플라스틱 팩에 담긴 쿠키 선물을 받아 올지도 모른다. 전부를 바꿀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만두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깨어있고, 인지하고, 인식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바꿀 것이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이 말한 것처럼 이건 그저 '세상에 대한 약간의 선의와 그 일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만 있으면' 되는 일일 뿐이다.


내가 앞으로 30년, 40년, 이 재미있는 요트를 계속 탈 수 있는 방법은 돈을 많이 벌어서 비싼 요트를 사는 게 아닐 것 같다. 그건 온라인 쇼핑 택배 덜 시키고, 테이크아웃 잔 사용 덜 하고,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담겨오는 음식 배달을 안 시켜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의 자료들을 참고했습니다.


- 다큐멘터리: 넷플릭스와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요.

*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 (2016)

* <산호초를 따라서> (2017)

* <빙하를 따라서> (2012)

<미션 블루> (2014)

<딥씨 챌린지> (2014): 제임스 카메론의 심해 탐사에 관한 이야기. 해양 오염은 아니에요.


- 책

* 찰스 무어, 커샌드라 필립스, <플라스틱 바다>, 2013

*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2020
*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2016

허유정,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2020

남성현,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2020

한네 튀겔, <우리는 얼마나 깨끗한가>, 2020





글: Edi

그림: Sams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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