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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대학에 다닙니다

by 요가언니



사람이 힘들 때도, 마음이 지칠 때도, 사랑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도 책에서 위로를 받고 답을 구하는 나는,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고 지적 욕구가 강한 사람이지만 실상은 고지식하고 답답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바로 뛰어들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으니 먼저 이 길을 가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그런 겁쟁이이다. 요트를 시작하면서도 그랬다. 실컷 물에 빠지고 돌아온 날이나, 바람을 잡지 못해 멍하니 배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온 날이면 책을 집어 들었다.


세상에는 책이 정말 많은데, 놀랍게도 요트와 관련된 책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읽었던 책은 <요트 교본>, <요트와 보트>, <세일링 요트 첫걸음>과 같이 해양, 체육 관련 학과의 교재로 쓰일법한 책들이거나, 요트로 200여 일간 세계일주를 한 김승진 선장의 <인생은 혼자 떠나는 모험이다>, 50여 일간 아시아를 여행한 허광음 선장의 <꿈의 도전, 요트로 세계여행>, 전국일주를 한 허영만 작가의 <허영만과 함께 타는 요트 캠핑>과 같은 요트 일주에 관한 책들이었다. 개론서와 여행 에세이, 요트에 관한 이 두 부류의 간극은 매우 컸다.


그 중간 어디쯤에 요트를 타는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정보를 담은 책들이 있는데, <요트경기의 전략과 전술: 날쌔고 슬기롭게>라는 2011년에 대한요트협회에서 발간한 경기전략에 관한 미국 번역서나 <요트 딩기 세일링>이라는 보트 핸들링에 관한 2012년 일본 번역서가 그것이다. 절판된 이 책들을 보려면 먼저 요트를 시작한 분들께 조심스럽게 부탁해서 소중하게 빌려보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돌려드려야 한다.


그러다가 North U라는 요트 대학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거창하게 요트 대학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은 North Sails라는 미국의 세일 제작사에서 운영하는 세일러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인데, 1980년대부터 세일링 저변의 확대를 위해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세미나는 세일링 인구가 많은 북미,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웨비나로 수업을 듣고 있다. 월드 챔피언, 올림픽 선수, 혹은 아메리카스 컵이나 볼보 오션 레이스 출신 선수들로부터 강의를 들을 수 있다니, 어디서도 이보다 질 좋고 수준 높은 요트 교육 프로그램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수업은 스키퍼 언니를 통해 알게되었고, 우리는 지금 요트대학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언니는 상급자라 매치 레이싱 마스터 클래스(North U online Match Racing Master Class Series)를 듣고, 나는 초급자라 웰컴 클래스(North U online Welcome to Match Racing 101 Series)를 듣는다.


미국 동부 시간에 맞춰 수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는 매주 일요일 새벽 5시에 수업을 듣는다. 늦게까지 놀고 싶은 토요일이고, 늦잠을 자고 싶은 일요일이지만,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켜며 이른 주말 아침을 시작한다.


레이스라는 것이 규칙에 따른 경기이므로 경기 전략 역시 룰에 기반한다. 그래서 우리의 교재는 룰북 1권과 전략북 1권이다. 룰북의 정식 명칭은 “2017-2020 Racing Rules of Sailing”인데, 제목의 숫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룰은 올해까지만, 4년 동안만 적용된다. 선수들이 “내년에 룰 북 새로 사야겠네”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수업 내용을 다 이해한다고는 말 못 하겠다. 대회를 나가본 적도 없고, 요트를 타는 스킬 조차 익숙지 않은 수준이니, 두꺼운 레이싱 룰 북을 펼쳐놓고 10번 룰에 위배된다거나, 이 코스에서의 전략이 어떠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잘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각하거나 결석하지 않고 수업을 들을 정도로 이 시간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나를 제외한 다른 100여 명의 학생들은 모두 북미와 유럽의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한국에도 요트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고, 아시아 여성이 당신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어서 기쁘다. 요트가 특정 나이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한 것도 큰 수확이다. 수강생은 10대부터, 6~70대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 다양하다. 하다못해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 자체도 재미있다. 코로나 때문에 요새 대학생들은 줌 zoom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고 하던데,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타는 것 마저도 즐겁다.




글: Edi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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