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움직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거나, 몸을 돌보기는 커녕 방치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복싱, 수영, 런닝, 헬스, 테니스 등을 시작하면서 몸이 좋아졌고 삶이 즐거워졌다는 내용의 에세이들을 읽은 적이 있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나에게는 그런 극적인 신체적 변화의 드라마가 없다.
그건 부모님 모두 운동을 좋아하시고 활발히 활동하시는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덕분이다. 수영을 잘하시는 엄마를 따라 수영장에 갔다가 초등부 수영선수를 했었고, 아빠는 그때 로잉 클럽에서 아마추어 선수 활동을 하셨다. 저녁을 먹고 나면 할머니와 산책로를 걷거나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몇 시간이나 한강변을 돌고 들어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항상 헬스장에 등록을 해놓았다. (매일 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각자의 운동 취미를 즐기러 나간다. 부모님은 등산 동호회에, 동생은 사회인 야구단의 선수로, 나는 아마추어 요트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헬스장에서 GX로 스피닝, 요가, 필라테스를 번갈아 듣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등록했다. 지도자 과정을 등록하러 갔던 것이 나의 첫 요가원 방문이었을 정도이니, 요가가 뭔지도 모르면서 왜 그런 무모한 결심을 했던 것일까?
오랜 시간동안 그때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과거의 나에게 돌파구가 필요했었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해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고,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은 남자 친구는 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참 외로운 시기였다.
“학교 폭력 당하는 학생들이 왜 자살하는지 알 것 같아.”
괴롭힘을 당하면 무기력해진다는 것, 우울증이 온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점점 사람을 피하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 상황을 싹 바꿀 만큼의 큰 변화가 필요했다. 이 수렁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재지도 따지지도, 아니 알아보지도 않고 GX 선생님께 받은 전화번호로 연락해서 수백만원짜리 프로그램을 등록해버렸다. (명품백 쇼핑 대신 요가원에 등록한 내가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다.) 실은 그때 새로 등록한 곳이 요가원만이 아니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한데, 그만큼 시선을 돌릴 곳이, 몰두할 것이 필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만큼 절박했다. 그리고 거의 6개월간 주말을 요가에 쏟아부었다. 과정 시작 이주 후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두 달 후 직장을 옮겼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신체적 변화의 스토리가 없는 대신 정신적 변화의 이야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함께 수련하던 A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항상 웃고 다니는 밝고 맑고 구김살 없는 그녀는 직장 내 직원 복지 프로그램으로 요가를 알게 되었고 몸이 가벼워지고 재미있길래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많이 친해진 후에 들은 얘기는 사뭇 달랐다. 스스로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처한 환경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자격지심, 미움, 시기 질투심, 원망, 후회로 속이 곪아가고 있을 때 불현듯 ‘그래, 사람들의 시선 따위 상관하지 말자.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란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렸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스스로 결심하고 요가 지도자 지격증을 딴 것을, 그녀는 살면서 처음으로 나를 위해 선택한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요가가 힘든 사회생활 중에 단비 같은 존재로 다가와 푹 빠지게 되었다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요가강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요새는 꽤 있다. B가 그런 케이스인데, 퇴근 후에 집 앞 문화센터에 운동 목적으로 요가 수업을 등록했다가 몸이 좋아지는 효과를 느끼고, 또 자신이 몸을 사용하는데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차차 다른 사람들 몸에도 관심이 생겨 전문적으로 배워보고자 지도자 과정을 듣게 되었고 1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만큼 확신이 든 그녀는 지금은 전업 요가강사가 되었다. 배움의 열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꾸준히 워크숍을 듣고, 또 다른 자격증 과정을 듣고 있는 중이다.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C는 경직되고 날카로운 조직에서의 오랜 직장생활에 몸이 망가져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요가원에 등록했지만 요가도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퇴사하고 여행을 갔는데 하필 여행지가 요가계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치앙마이였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덕인지, 퇴사 후 홀가분한 마음 덕인지 요가를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시작한 요가에서는 운이 좋게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삶이 안정되어 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요가는 몸의 체력만 길러주는 게 아니라 정신적 기초체력도 길러주는 것 같아요."
종교가 없는 그는 요가가 자신의 인생 운동이면서도 정신적으로도 기댈 수 있는 무언가라고 말했다. 지금은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한 덕에 요가를 취미로 즐기고 있다.
새로운 분위기에서 만난 요가가 신선한 기회로 다가온 케이스라면 D도 비슷한 경우이다. 20대 때 배웠던 요가를 우연히 7~8년 만에 야외공원에서 하게 되었는데, 싱그러운 풀냄새와 따스한 햇살 등 자연의 힘 덕분인지 그 느낌에 홀려 다시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고, 하다 보니 전문적으로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했다.
E와 F는 대학생 신분으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요가강사 자격증을 땄다. 수능이 끝나고 뭘 해야 할지 모르던 시기에 다이어트를 하러 요가원에 간 A는 요가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서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요가와 친구로 지내다가 4학년이 되어 막상 취업준비를 하려니 고민과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졸업은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일은 없는, 답 없는 진로 고민 시기에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녀는 졸업도 전에 이미 인기가 많은 요가 강사가 되었고 자유롭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요가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대학생이 되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요가를 시작한 F 역시 기대하지 않았던 개운한 느낌, 마음속 흙탕물이 가라앉는 느낌에 빠져 요가를 계속하게 되었다. 학생 용돈으로 매달 요가원 등록이 부담되었던 그녀는 혼자 수련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배워보고자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다. 지금은 대학교에서 소모임을 통해, 동아리를 통해, 각종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강사’의 자격으로 친구들에게 요가를 전파하고 있다.
그밖에 요가로 건강을 되찾으신 엄마의 추천으로 요가를 시작했다던가, 친구의 전파로 요가를 알게 되었다는 등 요가를 하고 있는 우리는 나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의 요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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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에디 https://instagram.com/edihealer
그림: 제시 https://instagram.com/jessiejihye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