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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Oct 14. 2021

새 사랑을 할 수 있으려면

<오, 발레리아 시즌2>


“이건 아드리안이 당신을 잊는, 그만의 방법이에요.”


아드리안의 새 여자 친구는, 전처 발레리아에게 말했다. 이혼한 발레리아를 뮤즈로 삼아 개최한 아드리안의 사진전에서 말이다. 전시장은 온통 발레리아였다. 곤히 잠든 모습, 막 깨어난 모습, 침대 위에서의 모습, 일에 열중하는 모습, 황홀감에 젖은 모습까지. 발레리아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남김없이 표출해내고 나면 아드리안은 발레리아를 잊고 새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은 사진의 모양의 띄고 있지만 사실은 기억이다. 아드리안은 함께한 시간과 기억을 배출해내는 중이고 새 여자 친구는 이 과정을 기다리고 있다.


막 전시장에 도착했을 때 발레리아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했다. 그건 그녀의 세 친구들도 마찬가지여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절친의 나체 사진에 친구들은 눈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인간의 나체가 예술로서는 최고로 아름다울지 몰라도 친구의 모습을 그렇게 보는 것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발레리아는 이내,

“우리의 관계가 좋았던 때 찍었던 사진들이고, 분명 존재했었던 시간들이니까.”

라며 흔쾌히 아드리안의 개인전을 축하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사진 속 그녀와 실제의 그녀를 비교하며 그녀의 가슴을 흘끔거렸지만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레리아는 자전적 소설을 출판했다. 그녀의 소설 역시 아드리안에 관한 이야기이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었으므로 그들의 예술의 소재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이 된다. 소설을 읽은 아드리안은 불같이 화를 냈다.


“왜 우리 부부 사이의 문제를 온 세상에 떠벌리냐고!”

“우리는 분명히 오랫동안 위기였고, 우리 사이의 문제를 나 혼자 짊어질 생각이 없어.”


발레리아는 아드리안의 무관심과 권태에 상처 받고 지쳤음을 토로했다.


아드리안이 화가 난 이유는, 둘 사이의 갈등이 작품으로 표현되어서가 아니다. 커플 사이의 갈등, 권태는 사랑, 열정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30대의 그가 이를 모를 리 없으니 말이다. 이유는 빅토르였다. 소설 속에서 발레리아는 아드리안과의 문제를 빅토르를 통해 푼 것으로 표현했다. 아드리안의 지속적인 관계 거부에 빅토르와의 섹스를 꿈꿨고, 아드리안의 회피와 단절을 빅토르와의 대화로 풀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질투심이다.


발레리아의 소설 <사기꾼>은 전적으로 빅토르에 의해 쓰인 것이기도 하다. 마감이 다가오도록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던 소설을, 빅토르와의 만남 후 순식간에 완성해냈으니 말이다. 이 책은 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이 소설에서 아드리안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지나간 옛사랑이지만 빅토르는 섹스의 신이자 열정적인 사랑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빅토르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 발레리아에게 이 책은 결혼을 깨는 위험을 감수하고 쓴 책이었는데 말이다.  

“너를 천천히 알고 싶어. 이 책으로 한꺼번에 알고 싶지 않아.”

처음의 이유는 이것이었고, 발레리아가 그를 떠난 후에는 옛 기억이 너무 떠올라 책장을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빅토르가 소설을 읽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발레리아는 상심했다. 그녀는 소설도 읽지 않을 뿐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를 ‘커플’로 명확히 규정짓지 않는 빅토르를 견딜 수 없었다. 빅토르는 관계에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집 열쇠를 발레리아에게 건넸다. 처음으로 여자 친구에게 집 열쇠를 주는 것이라 하니 빅토르로서도 큰 결심을 하고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했던 발레리아는 빅토르를 떠났다. 이번에는 빅토르가 낙담했다.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 부부였던 아드리안과 발레리아는 이혼 후 각자의 영역에서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이혼 후 발레리아는 빅토르와 잘 이루어질 것 같았지만 둘은 자꾸만 어긋났다. 새로운 남자 친구보다 헤어진 전 남편에게 신경이 더 많이 쓰이는 걸로 볼 때, 그녀에게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발레리아는 혼자가 되기로 했다. 혼자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시즌3에서는 사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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