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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Sep 26. 2022

당신에게 강아지란?

강아지, 이 성스러운 존재

안녕하세요? 슈렉이에요.

슈렉이는 2011년생, 11살 슈나우저입니다.

저에게는 슈렉이의 지난 10년간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영상은 더 없고요. 최근에 입양을 했다거나 떨어져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슈렉이는 3개월 때 우리 가족이 된 후 쭉 함께 살았습니다. 다만 어차피 집에 가면 매일 볼 수 있는 강아지이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저를 반겨주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진과 영상을 많이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SNS도 하지 않았었고요.


작년 이맘때쯤 10살을 막 넘은 슈렉이는 췌장염, 신장결석, 요로결석이 한꺼번에 오면서 입원과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제야 슈렉이가 강아지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그 때부터 슈렉이에게 매달리기 시작했어요, 가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그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줄줄 흘러내리는 일이니까요. 아니, 심장이 왈칵 쏟아지는 일이니까요.


슈렉이가 강아지별로 돌아갔을 때, 아무도 슈렉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 때부터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슈렉이와의 추억을 글로 쓰기 시작했고, 연말에는 슈렉이의 인스타그램을 만들었으며, 올 1월부터는 함께 유튜브를 찍어서 이 세상에 슈렉이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못한 것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오늘이라도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내가 가장 젊은 것처럼, 오늘의 슈렉이가 가장 어리고 건강하니까요.

저는 요가독이에요

주말마다 슈렉이와 함께 요가를 합니다. 다운독 포즈, 업독 포즈, 퍼피 포즈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요가 동작 중에는 강아지의 움직임을 본 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강아지들은 타고난 요기라는 말입니다. 물론 슈렉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엎드려있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지만, 가끔 제 옆에 다가와 앉아서 자기를 쓰다듬어 달라고 손짓을 합니다. 저는 슈렉이가 천재견이 되어 요가동작을 저와 똑같이 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내 옆에 앉아있어 주는 것, 나를 바라봐 주는 것, 그 함께하는 순간들을 영상에 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저, 우리 가족, 그리고 슈렉이를 예뻐해 주시는 모든 분들이 나중에 슈렉이가 강아지별로 떠났을 때 이 영상들을 보면서 슈렉이를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벚꽃개, 또 벚꽃개

올 봄에는 벚꽃을 보러 공원을 몇 군데나 찾아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꽃개”를 해야 했거든요. 슈렉이 덕분에 몇 년 만에 벚꽃 아래에서 까르르 웃으며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슈렉이는 저로 하여금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게 합니다.


미국의 작가 캐롤라인 냅은 <개와 나>에 “개들은 참으로 대책 없이 순수하다. 이들의 생은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형성되고 한정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들은 책임감의 무게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말했죠. 저는 여기에 덧붙여 주인은 기꺼이 그 무게를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책임이란 이를테면 매일 하는 산책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슈렉이는 하루에 4번 산책을 합니다. 다행이 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아침, 저녁은 아버지께서 출퇴근 전후에, 오전, 오후 두 번의 낮 산책은 어머니가 시켜주시고, 저는 평일 저녁에 두 번, 그리고 주말 산책을 담당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도와야 한다고 말하던데,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려면 온 가족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벚꽃이 져도 꽃개는 계속된다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강아지 식사를 직접 만듭니다.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췌장염이 생기면서부터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된다 하길래 지난 10년간 먹어온 사료 대신 신선한 야채와 고기로 직접 만들어 먹입니다. 슈렉이 밥을 만들다 보면 야채를 하나하나 다지느라 팔은 팔대로 아프고, 닭가슴살, 소고기, 오리 안심을 사느라 돈은 돈대로 듭니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게 이런 것 인가 봅니다. 그런데 슈렉이 견생에는 제가 만들어주는 이 밥이 전부인 거에요. 견생 먹어본 최고로 맛있는 미식이 이것이고요. 저만 바라보고 있으니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유난을 떨면서 키우냐고요? 슈렉이에게는 우리 가족이 온 세상 전부입니다. 먹을 것을 챙겨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밖에 데려나가지 않으면 아파트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강아지는 실외배변견이라서 밖에 나갈 때까지 대소변도 참고 기다립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품는 애착은 상대가 주는 기쁨뿐 아니라 상대가 야기하는 근심에서도 비롯된다. 그 상대는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이기에 성스러운 존재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반려견에 대해,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이므로 성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슈렉이는 제 책임이므로, 이 강아지는 저에게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https://youtu.be/LdWTSnG-Bn4

엄마 보디가드 슈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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