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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Mar 22. 2023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나이로 결정한다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dustyatticrarebooks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사회에 나오면서부터였다. 대학생 때는 수천만 원 학비를 냈으므로 마땅히 풍부한 장서와 방대한 전자자료를 보유한 대학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갖고 있었으나, 정작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학점 채우느라, 자격증 따느라, 그리고 남는 시간은 친구들과 노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기에, 성적과 관계없는 책을 본다는 것은 사치였다. 더 이상 성적표를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인이 되고 나서야 여유가 생겼다. 아니, 꼭 해야만 하는 공부가 없어지자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을 손에 잡기 시작한 시기가 요가를 시작한 때와 맞아떨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가 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요가를 했기 때문에 비로소 차분히 책을 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외부를 향한 관심을 끊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읽은 요가에 관한 책이 50권, 명상에 관한 책이 30권가량이다. 요즘 출간되는 관련 책은 대부분 읽었다. 브런치에 요가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요가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지식도, 경험도 부족한 채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독서 덕분이었다. 아이디어라는 것이 신 내림을 받듯 저절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여도 머릿속에 쌓아둔 재료가 없으면 절대로 생겨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나 이번에 졸업해.”

“대학교 졸업?”

“응. 요가전공 그거.”


요가 친구가 사이버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방송대학, 통신대학, 사이버대학 같은 원격대학에서 공부가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사이 코로나시대가 왔고, 대학의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모든 대학이 원격대학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유튜브 라이브, 인스타 라이브, 혹은 줌 사용자가 되었다. 65세이신 우리 엄마도 유튜브 라이브로 교육을 듣고, 줌으로 독서모임을 이끄신다. 우리 요가원은 폐쇄 기간 동안 줌으로 온라인 수업을 했었고 지금까지도 지방 수련자를 위한 줌 수업은 병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의 나이로 미래의 공부를 할지 안 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유독 마흔이 넘으면 본인이 알아서 뒤로 빠진다.    
                   - 김미경, <마흔 수업> 증에서-


요가책 50권과 명상책 30권을 읽으며 보다 체계적이고 깊은 가르침에 대한 갈증이 생겼을 때, 마침 친구가 대학 진학을 추천했다. 나는 바로 원서를 냈고 요가명상학과 학생이 되었다. 출산율 0.78명 대한민국의 대학은 이미 reskill, upskill을 내세우며 성인학습, 재교육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나이에 대학을 지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고 순조로웠다. 모든 상황이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세팅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애초에 내 월급 빼고 모든 게 다 오르는 이 시기에 공부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그런데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공부할 생각만 하고 있었더니 학비가 마련되었다. 아빠께 아이패드도 선물 받았다. 아이패드에 교재를 다운로드하여 애플팬슬로 필기를 하면서 공부를 하니 요즘 사람이 된 것 같아 아주 기분이 좋다. 십수만 원씩 들여 원서를 사고, 그 무거운 책을 들고 등교했던 옛날 나때 대학 얘기는 이제 안녕.  


요가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요가원 통장과 살고 있는 집이 압류당했다는 연락을 산후조리원에서 받았던 그 날의 일.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돈을 갚아야만 하는 상황을 맞은 선생님은 절망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내가 왜 요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한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그리고 요가, 건강, 몸에만 집중하며 힘을 키웠고, 다시 일어났다.


그 후 코로나로 요가원이 전부 문을 닫아야만 했던 시기, 그러니까 많은 요가원이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던 그 때, 선생님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고 했다. 다시 한번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코로나가 해제된 지금, 공부와 연구를 토대로 만든 강사 교육과정으로 해외에 진출하신다고 했다.


인생의 길에서 넘어졌을 때 학교로 돌아갔었다. 학교는 나에게 학위라는 방패를 쥐어 주었는데, 사실 그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단단해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것이었다. 넘어졌을 때, 아니, 발을 헛디뎌 구덩이에 빠졌을 때, 힘을 키우는 사람은 다시 일어나 뛰어오를 수 있다. 그리고 공부는 기꺼이 그 도약의 발판이 되어준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분 중에 나이, 경제 상황, 주변 시선 등이 두려워 새로운 배움을 주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제 겨우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입생이지만, 나는 2년 뒤 학위를 받은 후의 내 모습을 생생히 그릴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불황만 보고 무조건 줄이기 바쁘다. 밥도 줄이고 능력도 줄이고 공부도 줄이고, 다 줄인다.... 줄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줄인 만큼 무엇을 채울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줄이면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이 바로 미래의 돈이다. 그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
                  -김미경, <마흔 수업> 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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