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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pr 10. 2023

강아지 다리는 소중하니까

벚꽃놀이 다녀왔어요.

퇴근하는 나를 반기는 슈렉이의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수많은 부러움 댓글과 좋아요를 받았던 적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라 별건 아니었지만, 다른 데서는 받을 수 없는 환대라 자랑하고 싶었다. 그때 찍어놓기를 정말 잘했다. 이제 그런 장면은 볼 수 없으니까.


언제부터인가 슈렉이 귀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현관문을 열고, 중문을 열고, “슈렉아, 엄마 왔어~~”라고 불러도 꿈쩍하지 않는 것을 보고 슈렉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짐작한다. 이미 11살이 넘은 노견이니까 그럴 수 있지, 그래도 눈 앞에 보이면 몸을 일으키니 시력은 멀쩡한 것 같아 다행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잡았다.


남자답게 다소곳이 다리 모으고 자기!

얼마 전부터는 눈앞에 다가가도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엎드린 채 고개만 배꼼 드는 것으로 보아 눈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일어나는 동작이 느리고 굼뜬 것으로 보아 다리가 안 좋아진 듯하다. 허리가 아플 수도 있고…… 애견펜션에 다녀온 게 불과 얼마 전 일인데 말이다. 거기서 폴짝폴짝 뛰고 놀았었잖아. 기억 안 나 슈렉아?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슈렉이에게) “우리 슈렉이 산책 가는 게 그렇게 신나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슈렉이는 극도의 흥분상태로 사방을 향해 짖었다.


”멍친구들아, 나 산책 나왔어멍. 나 너무 신나멍!“


슈렉이가 하도 짖어서 주민들께는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지만, 슈렉이를 보면서는

‘네가 신나 해서 나도 기분이 좋아.’

라고 말했다. 슈렉이가 산책이 신나서 환호를 지르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처음에는 흥분상태로 리드줄을 당기며 뛰다가 2~30분쯤 걸어서 힘이 빠지고 나면 정상 걸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지난 10년간의 산책 패턴이었다.

   

다리가 많이 나아서 올 해도 꽃개 성공!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엘리베이터에 내려서부터 뒷다리가 천근만근, 거북이걸음으로 걷는다. 그나마 10~20분쯤 걷고 나면 근육이 풀리는지 그때부터 속도가 나 정상걸음으로 걸었다. 정반대가 된 상황이 너무 이상해서 걷다 말고 슈렉이 뒷다리를 만져봤다.


슈렉이 뒷다리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때부터

“아이고 튼튼한 뒷다리, 말벅지, 꿀벅지, 말근육!”

이라고 감탄해마지 않던 단단한 근육이었는데, 어라? 이 뒷다리 근육이 말랑말랑하다. 근육들이 다 어디 갔지?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뒷다리를 질질 끌고 걸을 수밖에.


당장 동물병원에 갔다.

‘슈렉이가 평생 못 걷는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엑스레이로 안 되면 전신마취하고 MRI, CT 뭐 이런 어렵고 비싼 검사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못 걷게 되면 뒷다리에 휠체어 같은 보조기를 장착해줘야 하나? 보조기를 장착한 것을 슈렉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 대잔치를 하던 나에게 원장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이가 있으니 관절염일 수 있어요. 우선 일주일 진통 소염제를 처방해 줄게요.”


심지어 지난 정기검진이 3주 전이었고, 그때 찍은 엑스레이가 너무 깨끗해서 이번에 굳이 엑스레이를 찍을 필요도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지금 허벅지 근육이 다 빠졌는데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


라고 반문하긴 했지만, 실은 원장선생님의 확신에 찬 대답에 안심이 됐다. 심지어 슈렉이 다리가 조금 괜찮아져서 잘 걷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꽃개 꽃개 봄꽃개

그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다. 병원 가는 것을 죽으러 가는 것 마냥 무서워하는 겁쟁이 슈렉이, 그러니까 차를 타면 본능적으로 병원에 가는 줄 알고 벌벌벌벌 떨기 시작하는 슈렉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면, 멀쩡하던 몸마저 망가져서 병이 들 것 같기 때문에 제발 병이 아니기만을 바랬다. 집에서 마사지해 주고 온찜질해 주고 몸에 좋은 식사 만들어주고 산책 나가는 것은 다 할 수 있으니까, 제발 병원 가야 하는 병만 아니기를 바랐다. 나에게 안겨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이렇게 공포스러워하는 병원으로 밀어 넣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병원에 다녀온 후 일주일 동안 소염진통제를 먹은 슈렉이는 믿어지지 않게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진통제 때문에 통증을 못 느껴 평소처럼 걷는 것일 수도 있고, 초기에 관절염 염증을 잡았을 수도 있겠다. 일시적이건 영구적이건 어쨌든 지금은 걸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슈렉이가 계단을 오르내릴 일이 생기면 내가 안고 대신 오르내린다.


슈렉이네 집 매트 깔았어요.


집의 인테리어도 바꿨다. 펫프렌들리 인테리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방에 깔려있던 논슬립 쿠션매트를 거실로 갖고 나와 슈렉이가 주로 지내는 우리 엄마 방에서부터 거실로 이어지는 길을 논슬립매트로 연결시켰다. 이전부터 아기를 키우는 친구들 집에 논슬립 쿠션매트가 깔려있는 것을 보면서

‘뭘 저렇게까지 유난스럽게 하고 사나? 우리 어릴 때 집에 저런 것 안 깔려 있어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컸었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슈렉이 덕에 그 마음을 알게 됐다. 내가 거실에 논슬립매트를 퍼즐처럼 맞추고 있는 걸 보신 우리 엄마 아빠도 아무 불만이 없으시다. 슈렉이 다리는 소중하니까.  


내일은 슈렉이의 12번째 생일날이다.


슈렉이의 12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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