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언니 Apr 27. 2023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줄기세포치료를 결심하다

“부자들이 젊어지려고 한다는 그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노화는 자연스러운 거야.”


그걸 하기로 결정했다. 줄기세포치료.


3월 11일. 애견팬션에서 즐거웠던 시간

말로는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는 슈렉이를 꽤 오래 회피하고 방치했다. 머리가 복잡하고, 골치가 아파서 그랬다. 핑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험이 코앞이었고,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는, 슈렉이의 존재에 비하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구차한 변명들. 슈렉이를 응원하는 이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슈렉이가 아프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3월 11일 애견펜션을 다녀온 후 하루 이틀 계속 누워만 있기에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차를 오래 탔고, 덩치 큰 리트리버를 상대하느라 긴장했었으니까. 그런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기력을 되찾기는커녕 점차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4월 1일. 병원 갔다가 서울숲 들러 산책한 날

4월 1일, 처음 병원에 가 관절염을 진단받고 일주일치 진통소염제를 처방받았다. 약을 먹는 7일 동안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지는 듯했고, 잘 걷게 되었다. 그런데 약을 끊고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조금씩 안 좋아졌다. 일주일이 지나자 걷다 주저앉는 것은 기본, 스스로 일어나지를 못했다. 집에 돌아오면 환영은커녕 고개만 빠끔히 들뿐이었다. 일어나게 해 보려고 앞에 과자를 놓아주면 과자를 포기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잡아보고자 하루에 몇 번씩 찜질을 해주었다. 슈렉이를 예뻐하는 친구가 안쓰럽게 여겨 적외선 찜질기를 사보내준 덕분이다. 찜질기를 틀어주면 노곤노곤 근육이 편안해지는 듯했으나,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서 걸을 수는 없었다.


약이 떨어진 후 열흘쯤 지났을 때는 산 송장이었다. 슈렉이 밥 만들 재료를 준비하는 날이면 내 옆을 지키다가 고구마며 토마토며 갖은 식재료를 얻어먹는 재미로 한두 시간을 꼼짝없이 부엌지킴이로 있던 녀석이 눈도 끔뻑 안 했다. 슈렉이가 내 옆에서 기다려주는 게 좋아서 일부러 고구마도 삶아 준비해 놨는데 먹으러 오지 않았다. 오기는커녕, 스스로 침대 위에서 몸조차 뒤집지 못해 내가 30분마다 가서 몸을 굴려 뒤집어주었다. 팔다리가 저리거나 신경이 눌려 마비가 올까봐 말이다.

거실에서도 방에서도 적외선 찜질

가족 모두가 예민해졌다. 엄마와 수시로 싸웠고 자주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아픈 아이를 억지로 걷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고 엄마는 저렇게 누워만 있다가는 신경이 다 눌려 멀쩡한 곳까지 마비가 올 것이라 주장하셨다. 엄마가 슈렉이를 억지로 일으키려 할 때마다 슈렉이는 신음소리를 내거나 울부짖었고,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불쌍한 슈렉이 아프게 하지 마!’라고 악을 썼다. 나는 약을 먹이는 게 중요해서 슈렉이가 좋아하는 고구마 안에 쓴 약을 숨겨 무한정 주려했고, 엄마는 단 것을 한꺼번에 먹으면 혈당수치가 올라간다며, 슈렉이의 약한 췌장을 걱정하셨다. 나는 슈렉이를 일주일에 세 번, 한시간 이내로 밖에 안 보기에 악화되기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때마다 흥분해 그 분노를 엄마한테 쏟아냈다. 24시간 슈렉이를 돌보시는 엄마는 무덤덤, 아니 지쳐 보였다.


문득, 이러다가는 이 아이를 그대로 강아지별로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만 지내다가 뼈만 앙상히 남은 채로. 평일에 휴가를 냈고 병원을 예약했다. 두 번째 병원진료가 4월 19일의 일이다. 진료 전날에는 너무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 한참을 울었다. 디스크로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이후의 치료과정이 무서워서 눈물이 났고, 디스크가 아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진단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어서 눈물이 났다.


“디스크예요.”


MRI를 찍어보고 싶다고 했으나 슈렉이가 다니는 병원에는 장비가 없었다. 동물 영상의학과에 가면 전신이 아닌 경추, 흉추 이런 식으로 부위별로 나눠 찍는데 총 140~180만 원가량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다. 등을 웅크리고 있었고, 요추부위에 손만 대면 공격적으로 변하고, 뒷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새가 누가 봐도 디스크였기 때문에 굳이 영상의학과에 가서 확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디스크 판정을 받게 되면 어떤 치료를 하게 되나요?”

“보통은 수술을 하죠.”

“디스크 수술이란 게 정확하게 뭐예요?”

“신경이 눌려 발생하기 때문에, 신경을 압박하는 뼈를 깎아냅니다. 그래서 신경이 더 이상 눌리지 않게 하는 거죠. 자, 여기 사진처럼요, 신경을 노출시키는 거예요.”

“네? 척추 뼈를 깎는다고요?”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강아지이기 때문에, 동물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라면 내가 디스크 수술을 했다, 앞으로 어떤 자세는 주의해야 한다, 어떤 스트레칭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등의 인식이 있으나 동물은 그렇지 않다. 당장의 통증이 사라지면 점프를 하고, 두 발로 서려고 하기 때문에 수술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건 나도 동의했다. 옆으로 누워서 고개만 겨우 들뿐 몸도 가누지 못했던 슈렉이는, 그러니까 자기 몸에 손만 대도 아프다고 잇몸을 드러내며 위협하던 슈렉이는 소염진통제를 먹자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리셋. 자기가 아팠었다는 것을 말끔히 잊었다. 그동안 보도블록에서 한 칸 내려갈 때 2~30센티 길이의 배수구를 못 넘어서 발만 동동 구르던 슈렉이가, 진통소염제 7일 먹었다고 이제는 스스로 점프를 하며 내려갔다. 심지어 자꾸만 네발이 아닌 두 뒷발로만 서려고 몸을 움찔움찔해서, 못하게 막아야 할 정도였다. 본인이 허리가 아팠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은 것이 분명했다.


며칠사이에 목 가누는것도 힘들어했어요. (옷은 똑같지만 다른 날임)


“슈렉이가 12살 노견인데, 수술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동물병원 원장님은 디스크로 뒷다리가 모두 마비되어 앞다리로 몸을 끌고 다니던 말티즈가 콩콩 뛰어다니는 케이스, 절뚝거리던 푸들이 잘 걷게 된 케이스, 탈모 진행으로 온몸이 벌거숭이가 된 포메라니언이 풍성한 검은 털을 갖게 된 케이스 등 성공적인 임상 자료들을 보여주셨다. 말로만 듣던, 늙은 부자들이 젊음을 되찾기 위해서 한다고 소문으로만 듣던 ‘줄기세포치료’였다.  


줄기세포 치료, 인간도 회춘시킨다는데 이 작은 강아지 몸뚱이에는 조금만 주사를 해도 효과가 나타나겠지. 그저 나의 빈약한 월급과 얄팍한 통장잔고가 문제일 뿐. 한 번에 수십만 원의 비용이 드는 주사를 일주일 간격으로 맞다가 괜찮아지면 이주일 간격으로, 그러다가 한 달 간격으로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걸 내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귀엽다 생각한 이런 선자세들이 디스크의 원인이겠죠? 불과 8개월전 사진….

5월 5일에 첫 줄기세포치료를 시작한다. 병원에서 들은 설명과 보여준 자료는 성공적인 케이스들만 모아놓은 것이라는 것, 나도 안다.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줄기세포 치료를 시작할 마음이 없었기에 세세히 물어보지 않았으나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들인 금액에 비해 효과가 없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신나게 뛰어놀아야 할 강아지를 침대에 송장처럼 눕혀놓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슈렉이는 아직 12살 밖에 안 됐고, 눈도 잘 보이고, 밥도 잘 먹고, 정신도 멀쩡하고, 다른 문제가 하나도 없는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 다리는 소중하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