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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May 25. 2023

강아지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좌) 11살 슈렉 (우) 10살 슈렉. 노견같지 않쥬? 지금은 12살이에요.

아빠: “내가 보기에 2살은 젊어진 것 같다. 목줄을 끄는 힘이 달라졌어.”

나: “정말? 그럼 슈렉이 10살 때 체력으로 되돌아갔다고?”

엄마: “맞아. 이제 쉬할 때 다리도 번쩍번쩍 들어. 다리 들 힘이 있으니까 쉬도 자주 하더라고.”


아침산책 전담 슈렉이 할아버지와 점심저녁산책 전담 슈렉이 할머니와의 대화이다. 줄기세포 집중치료 3회가 효과가 없지는 않았나 보다.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 간격으로 왕 주사기에 가득 담긴 줄기세포를 다리에 주사했고, 약 복용도 병행했다.


(좌) 통증으로 등 굽고 꼬리 말림 (우) 디스크 치료 후 S라인 척추 회복

못 걷던 슈렉이가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산책할 때 짖으며 달려드는 강아지에 놀라 주저앉은 적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지는 않는다. 앓는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흘려서 내 가슴이 찢어지게 하지도 않고, 식욕이 돌아왔는지 밥도 잘 먹는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굽었던 등도 펴져서 평평해졌다. 자기 등에 손만 대도 물려고 으르렁 거리던 녀석이 자기 몸을 다 내어준다. 이제 허리도, 다리도 만질 수 있다. 줄기세포주사의 효과로 디스크가 완치된 것인지, 진통소염제로 인한 일시적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참, 의사 선생님께서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것과 줄기세포치료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건사료를 먹어서 목이 말랐었나 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세포가 재생되어 수분을 필요로 한다는 그럴싸한 설명을 갖다 붙이며 지난주에 글을 썼던 내가 머쓱해진다.


실은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하나 더 있다. 11살이 넘어가면서부터 노화된 슈렉이의 청력이 회복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현관문을 열고 닫아도, 인기척도 듣지 못하던 슈렉이가 요즘에는 도어록 소리를 듣고 현관 앞에 나오기도 한다. 슈렉이, 정말로 회춘한 것 아닐까? 2주 후 4차 줄기세포 치료 때 원장선생님을 만나 여쭤봐야겠다.


(좌) 디스크로 엎드려서 이동 중 (우) 왕년에 한 손으로 운전하던 강아지


3번의 집중 줄기세포치료 완료 기념으로 남산공원에 갔다. 벚꽃놀이차 서울숲에 갔던 게 마지막 외출이었으니 한 달 반 만이다.


그동안 집 앞 산책 5분이 다였다. 그것도 걷기 싫다는 녀석에게 간식을 주며 겨우겨우, 쉬 한 번만 하자고 사정사정하며 말이다. 슈렉이는 디스크로 잘 걷지 못하는 동안 소변을 보지 않았다. 평소 슈렉이는 남성미를 뿜뿜 뽐내며 한 다리를 높이 더 높이 들고 나무에 쉬를 했었다. 마치 덩치가 엄청 큰 멍멍이인양 말이다. 그랬던 녀석이 통증으로 한 다리를 들 수가 없어, 쭈그리고 앉아서 소변을 보게 되니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소변, 대변을 참으려고 밥을 잘 먹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디스크 이후에는 한 번에 10분 이상 걷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노견이니까 관절을 아껴 써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셔서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안고 다니게 될 것 같아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는데, 슈렉이는 남산에서 날아다녔다. 오랜만에 큰 공원에 와서인지 이곳저곳 풀 냄새를 맡느라 무아지경. 그동안 집에 누워만 있던 우리 강아지, 얼마나 바깥 냄새가 그리웠을까. 심지어 30cm 길이의 배수구를 점프해서 넘었으니 말 다했다. 다 나았네, 나았어!


남산 산책 브이로그

슈렉이가 아픈 후 멈췄던 인스타그램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응원댓글에 밀린 답글도 달았다. 그동안 슈렉이가 아파서 신음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다른 강아지들이 애견카페에 가서 신나게 뛰어놀고 예쁜 옷 입고 캠핑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슈렉이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를 자책하느라 화만 났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인스타그램에는 좋고 예쁘고 블링블링한 것만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인스타 친구들도 자꾸 아픈 사진을 올리면 보기 싫고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슈렉이가 진짜로 아플 때의 사진과 영상은 단 한 개도 올리지 못했다. 아프다는 말과 함께 올렸던 영상은 전부 진통제를 먹고 호전되었을 때, 봐도 그다지 가슴 아프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렉이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수많은 따뜻한 응원의 댓글이 달렸다. 강아지들이 말하는 ‘힘내’, ‘기도할게’, ‘화이팅’이라는 말이 진짜로 힘이 될 줄은 몰랐다. 댓글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었는지…… 강아지를 키우며 경험한 놀라운 세계였다. 개부모들의 연대라고나 할까.


이건 뽀나쓰! 슈렉이 전 여친 가을이 잘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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