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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n 16. 2023

아기가 된 강아지

강아지 줄기세포치료 4차


어느덧 4번째 줄기세포 치료일이 되었다. 매번 슈렉이 할머니에게 병원진료를 부탁드리다가 마침 공휴일에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어 직접 데려갔다.


형아 차를 타면 공원에 놀러 간다고 각인이 되어 있는 슈렉이에게 형아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배신을 안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긴 산책을 자제하라고 하신 후로는 긴 산책을 하지 않는다. 고작 20분을 걷기 위해 15분을 운전하고, 15분 이상 주차를 기다리며 남산공원에 갔다. 처음 가보는 길을 가니 수사를 하듯 냄새를 맡느라 코는 쉴 틈 없이 좌우로 씰룩씰룩, 고개는 위로 들 틈이 없었다.

핫핑크 크롭티에 선글라스를 끼고 산책을 하니 보는 사람들마다 예쁘다고 난리다. 슈렉이 기분 좋게 해 주려고 반숙도 준비해 갔다. 높은 곳에 올라가 탁 트인 서울 전망이 보이는 곳에서 (슈렉이가 전망을 보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숙을 먹였다. 간식을 먹고 나면 급속충전이 되는 슈렉이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줄기세포 치료를 하면서 정말 많이 좋아졌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는 있지만, 종종 뜬금없이 뒷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기도 한다. 여전히 산책 전과 후의 체력차는 확연하다. 10분쯤 걷고 나면 걸음걸이가 슬슬 느려지는 것이, 체력이 방전되어 가는 것 같다. 힘들어 보이면 안아주다가, 평지가 나오면 내려 혼자 걷게하다가를 반복하며 산책을 하고 병원에 갔다.

공원산책 후에 병원에 데려갈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었나 보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떨림이 시작된 것을 보니 말이다. 강력한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양, 아니 지진이라도 난 양 몸을 떨기 시작한다. ‘빨리 슈렉이 이름 불러주세요. 떠는 시간 좀 줄이게.’ 이 생각뿐이다.  


1차 치료를 데려갈 때만 해도 혼자 서는 것도 힘들고 사지에 힘이 없었던 터라 저항 따위는 없었는데, 이제 주사를 3번이나 맞아봐서 어떤 것인지, 얼마나 아픈지 알기도 하고, 힘도 세져서 발버둥을 쳤다. 슈렉이는 힘이 정말 세다. 남자 선생님이 양팔로 제압하자 입질을 시작해서, 입마개까지 씌우고 나서야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얌전해졌다. 이제 힘 좀 있다고 주사 놓는 와중에 발차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하며 팔다리가 결박된 슈렉이의 미간을 쓸어줬다. ‘괜찮아, 괜찮아.’ 주문을 걸 듯 말하면서. 특별히 안 좋은 곳이 없어서 원장선생님과 길게 할 말은 없었다. 그저 2주 뒤 5차 주사 예약만 잡았을 뿐이다.


오리모양 입마개. 줄기세포 주사는 뒷다리에.

슈렉이는 집에 오고 나서는 실신한 듯 잠만 잤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이제는 늙어서 노인처럼 잠만 자네.’라고 말하던 것을 이제는 ‘잠 푹 자고 세포 재생되어서 아기처럼 건강해져라.’라고 바꿔 말한다.  


슈렉이는 12살이 넘고 나서는 다시 아기가 된 듯하다. 1살이 채 되기 전에 했던 배변훈련도 아기처럼 다시 한다. 엄밀히 훈련은 아니다. 12살이 된 어른 강아지를 훈련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저 배변패드에 조준을 성공한 날은 폭풍칭찬을 해주고, 배변패드 밖, 매트 위에 쉬야한 날은 조용히 치우는 일을 반복할 뿐. 주로 슈렉이 할머니께서 치우시느라 그게 고되지만, 배변패드에 싸는 것도 아기슈렉이를 보는 것 같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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