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대화는 애초에 끊어낼 수 있도록

by 김뭉치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원치 않는 대화는 애초에 끊어내고, 논쟁을 시작할 땐 기존의 흐름을 바꾸는 것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무례한 말에 지고 싶지 않을 때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고, 기꺼이 대답해주고 싶을 때엔 적절하고 멋진 대답으로 같이 성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게.

- 이민경, '왜 쓰게 되었는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중에서



그리고 다음의 두 가지에 동의하지 않는 분만은 제가 먼저 단호히 거절합니다. 첫째,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므로, '나만은 차별에서 자유롭다'는 말이 오만이라는 것.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뒤로 갈수록 점점 흥분하게 될 테니 지금 그만두기 바랍니다. 둘째로, 내가 겪은 차별은 내가 안다는 것. 멋대로 제 경험을 부인하는 사람 또한 제가 먼저 거절합니다. 책을 내놓고 읽지 말라니 당황하셨죠? 하지만 말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겐,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한마디를 위한 책입니다.

- 이민경, '주의사항'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중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막말이 쏟아집니다. 이 와중에 입을 못 떼는 건 이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정말 어려운 질문에야 공부를 더 해야겠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누가 봐도 몰상식한 말이나 명백한 언어폭력에도 대꾸할 말을 못 찾는 상황이 답답하셨을 겁니다. 과연 공부를 더 하면 그때는 속 시원히 대답하고 합리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될까요?

전 언어 전공자입니다. 어느 날 교수님이 형편없는 저희 실력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죠. "언어에는 직관이 필요한데, 직관이 없다면 모방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겪던 중에 문득 생각했습니다. 여성주의도 언어와 같다.

여성으로 태어난 우리는 직관까진 있어요. 누군가의 발언이나 질문이 어딘가 불편하고, 저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그 느낌이 바로 직관입니다. 직관까지는 있으니 잠재력은 갖춘 셈이지만 그걸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영어를 오래 배워서 독해나 청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작문을 하려 들면 막막해지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나의 말을 하기까지는 별도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작문 연습을 별로 해보지 않은 원어민과 같습니다. 여성으로 오래 살았지만 막상 특정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으니까요. 뭐라고 말할지 모르는 건 보통 표현할 언어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국어를 오래 전공한 저는 직관을 가진 사람이 가장 부럽습니다. 직관이라는 건 단기간에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니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당신에게는 언어가 필요합니다. 직관은 있으니 적절한 언어를 만나는 것만으로 금세 생각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은 미리 잘 벼려두면 적재적소에서 나를 지켜줄 검이 됩니다. 이 책은 이론 공부를 더 하기에 앞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줄 호신술과 같습니다. 호신술이란 반드시 써먹지 않더라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할 수 있으니까요.

- 이민경, '쓰임새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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