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by 김뭉치
나는 땅에 쓰러진 아버지 옆에서 반쯤 눕다시피 한 자세로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살아오면서 아버지를 정말로 만져볼 수 있다고 느낀 게 그때가 처음이었음을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사랑과 슬픔을 마음에 담고 아버지에게 꼭 매달렸다. 내 슬픔의 일부는 사랑했던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가 더 자유로워질 거라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슬퍼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힘을 휘두를 거라는 두려움 없이 그를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유일한 때가 아버지가 죽어서 누워 있는 그 순간이라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아마도 이 비슷한 슬픔을 느껴보지 않은 여성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때때로 남자가 죽길 바란다는 진실을 말하는 일은, 아마도 우리 여성들이 마주하기 훨씬 더 어려운 진실(여성들이 자신의 힘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자신의 모습이 되기 위해 애쓸 때), 그러니까 이런 바람이 여성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준다는 진실까지 함께 말하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우리 여성들을 분열시킨다."

내가 스스로의 힘을 아직 알지 못했던 20대 젊은 여성이었을 때, 나는 내 인생의 남자들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격렬한 분노와 폭력에 대응했다. 나는 아버지가 사라지는, 죽어서 없어지는 꿈을 꾸곤 했다. 죽음은 "아버지가 집에 올 때까지 기다려"라는 선포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강렬했고, 내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힘은 너무도 생생했다. 어린 시절 내 방 침대에 누워 극심한 분노가 담긴 아버지의 목소리, 집 안을 울리는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언제 들려올지 몰라 가슴을 졸이면서 나는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가 죽는다면, 우리는 살 수 있을 텐데.'

전 세계의 여성들과 아이들은 남자들이 죽어서 자신들이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남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여성과 아이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무시무시하게 가부장적인 힘을 휘드르고, 여성과 아이는 두려움과 다양한 형태의 무력감으로 움츠리고 살면서 자신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 자신들에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은 남자들이 죽는 거라고,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집에 오지 않는 거라고 믿는다. 이것이 남성중심주의에 존재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진실이다. 남성의 지배를 받는 여성, 그리고 여자아이, 남자아이는 그 남자들이 죽기를 바란다. 그 남자들이 바뀌려 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자들이 지배자가 되지 않으면 그들을 보호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집을 떠나 대학에 들어간 뒤 나는 집에 전화를 했다가 아버지가 받으면 그냥 끊었다. 아버지에게 할 말이 없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내게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고, 다정하거나 사랑이 담긴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와 나눌 말이 없었다. 내게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내가 아버지를 잊을 수 있다고, 아버지를 거부할 수 있다고 가르쳐줬다. 아버지를 외면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일부를 외면했다. 남자들이 없는 세상, 여성과 남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 여성들이 부정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의 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페미니즘이 만든 허구다. 여성들의 삶에는 남성들이 필요하다는 진실, 여성들이 원하든 아니든 남성은 여성의 삶에 존재한다는 진실,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이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진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남성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여성들은 자신의 힘을 온전히 주장할 수 있다.

내가 페미니스트 사고 덕분에 가부장제가 정해놓은 경계를 넘을 수 있었다면,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완전함고 자기 회복을 찾으려 한 덕분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면 적어도 아버지의 폭력으로 생긴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필요는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아버지와 나의 화해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해야 했고, 아버지에게 내 진실을 말해야 했으며, 아버지를 붙잡고 내게는 아버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요즘 집에 전화를 하면 나는 아버지의 그 목소리, 친숙하고 발음이 다 틀리는 남부 말투를 아주 기분 좋게 듣는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영원히 듣고 싶다. 아버지, 내가 품에 안을 수 있으며 내 사랑을 받고 또 나를 사랑해주는 아버지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를 이해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한 여성으로서 내 힘을 주장하려 한다면 나는 그를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로 묶여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성과 남성이 한데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부장제가 남성들과 그들의 삶에 지속적으로 힘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면서 나는 오늘날 우리가 남성성의 위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페미니스트 사고와 실천인 이유를 밝히고 우리 여성들이 남성들도 함께 참여하는 페미니즘을 만들자고 주장하려 한다. 각 장의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이 책 전반에서 여러 요점을 반복해 설명했다. 변화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면 남성들은 바뀔 수 없다. 사랑의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면 남성들은 사랑하지 못한다.

남성들이 변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변하기를 두려워한다. 또한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떤 식으로 가부장제가 그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하고, 자기 느낌을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또 사랑하지 못하게 했는지를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사랑을 알기 위해 남성들은 지배 의지를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변화해야 한다.


- 벨 훅스, '서문 - 남자에 대하여',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이순영 옮김, 책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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