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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Oct 17. 2022

기억을 파헤쳐 역사 속 잊힌 개인을 조명하는 일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

올해 노벨 문학상은 프랑스의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습니다. 지난 10월 6일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에 따르면 작품 속에 드러나는 “개인 기억의 뿌리, 집단 통제를 드러낸 용기와 냉정한 예민함”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아니 에르노를 선정한 이유였는데요. 한림원의 발표대로 아니 에르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는 작가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경험을 돌아본 뒤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쓰는 걸 ‘자기 서사’라고 불러요. 아니 에르노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전기도, 물론 소설도 아니다.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 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자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 역사가 되어야 했다.”


이 말에 오늘날 자기 서사 작품들이 가지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미처 조명받지 못한 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와 세계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된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은 20여 권 정도입니다. 아니 에르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 구조를 파헤치는 작품들이 대부분인데요.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로 시작되는 이 책은 아니 에르노가 쓴 어머니에 대한 소설입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어머니’이자 한 시대를 살다 간 한 ‘여자’에 대해 기록한 거지요. 아니 에르노는 한림원이 밝힌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처럼 이 책에서도 “냉정한 예민함”을 유지합니다. 자신을 너무 불쌍히 여기거나 회한에 젖지 않은 채 최대한 객관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죠.


《한 여자》아니 에르노 지음 l 출판사 열린책들 l 가격 1만3800원


이 책 속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는 노르망디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생에 걸쳐 가난이라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어 한 것으로 보여요. 새로 나온 노래와 책을 접하고 화장을 하고 연극, 영화를 보러 다니며 자신감을 얻고자 했습니다. 또한 딸인 아니 에르노를 통해 배움에 대한 열망을 추구하고 자신이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나 딸은 어느 순간 어머니가 더는 자신의 삶의 모델이 될 수 없음을 느낍니다. 교육을 통해 계층과 계급의 사다리를 올라간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의 거친 말투가 거슬리기 시작하고 어머니는 곧 딸의 이런 속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사실 아니 에르노가 처음 자기 서사를 선보였을 때 과연 그의 작품을 ‘문학’으로 부를 수 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자신의 삶을 드러낸 탓에 ‘노출증’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요. 하지만 에르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그 결과, 2003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됐고, 2011년에는 그의 작품들을 삶의 연대기 순으로 한데 엮은 전집 《삶을 쓰다》로 갈리마르 총서가 출간됐습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올해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요. 공감과 연대감을 불러일으킬 나의 이야기, 끈기를 가지고 오늘부터 써 보면 어떨까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2년 10월 17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2/10/16/20221016014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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