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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Aug 07. 2023

올여름 바다 못 갔다고 해서 아쉬워 말아도 되는 이유

 

《해변과 바다》베르나르두 카르발류 지음 l 출판사 그림책공작소 l 가격 18000원



이제 바다에 갈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빠르면 이달 중순부터 해수욕장이 폐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직 바다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는 없어요. 이 책과 함께라면 해변과 바다를 오롯이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은 ‘글자 없는 그림책’이에요. ‘그림책’이라고 하면 보통 영유아들이 읽는 책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달라요. 전 연령대가 타깃인 ‘100세 그림책’이라 청소년기에도 읽기 좋아요.


책을 살펴보면 신기할 거예요. 분명 책인데 글자라곤 전혀 없으니까요. 이 책의 장점은 분명해요. 글자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읽는 사람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거든요.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읽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거듭 새로울 수 있으니까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발휘하기에 더없이 좋지요.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재미난 책을 그렸을까요? 이 책의 저자  베르나르두 카르발류는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리스본 미술대학에서 순수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그림책 전문 출판사를 만들어 역시 글자 없는 그림책인 《아무도 지나가지 마!》 같은, 놀랍고 재미있는 그림책들을 만들었지요. 베르나르두 카르발류의 그림책은 매력적인 일러스트와 독특한 이야기를 통해 읽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기로 유명해요. 그래서인지 그림책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볼로냐 라가치 상’과 포르투갈의 ‘최고 일러스트레이션 상’ 등 유명한 상을 많이 받았어요.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여요. 어떤 여자는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고 어떤 아이는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고요. 해변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건지 조개를 줍는 건지 무언가를 줍는 아저씨도 보이네요. 아직까진 누가 주인공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두 번째 장에서는 막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거나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다 해변가로 나온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세 번째 장에서는 바닷가에 앉아 있는 여성이, 네 번째 장에서는 신중하게 조개를 고르는 턱수염 아저씨가 보여요.


다음 장에서는 단체로 놀러 온 사람들이 모래사장에서 왁자하게 떠드는 모습이 담겨 있네요. 뜰망을 들고 무언가를 채취하는 듯한 바다 사나이, 바닷속에서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태닝을 하는 사람, 모래사장에서 불가사리를 찾는 여성이 차례로 등장하고요. 이윽고 앞서 나온 모든 사람들이 바다에 풍덩- 빠져서 온몸으로 바다를 즐기는 모습이 나와요. 초반엔 썰물이었는데 막바지에 가면 밀물이에요. 모래사장 쪽으로 바닷물이 성큼 밀려왔어요. 신나게 바닷속을 헤엄치는 사람들에 이어 첫 장에서 독서를 즐겼던 여성이 클로즈업됐네요. 자세히 보니까 흰색 가방을 메고, 카디건으로 보이는, 걸칠 것도 들고 왔어요. 바닷속 사람들은 잠수를 하고 자유형을 하고 다이빙을 하고 배영도 해요. 이제 보니 모두가 이 책 속 주인공이에요. 저마다 물에 두둥실 뜬 모습을 보니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에요. 돌고래 떼가 와서 춤을 추다 서서히 물러가는 것으로 그림책은 끝나요. 글이 없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지만, 그림을 통해 그들의 즐거움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어요.


가장 인상적인 건 파도가 일렁이면서 점점 힘 있게 밀려오는 장면이에요. 물결의 높이에 주목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조금씩 일렁이다가 끝내 차오르는 바닷물결의 아름다운 리듬을 느낄 수 있으니 이 방법으로도 읽어보세요.


파도처럼 유연한 제본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이라 잘 펴지고 35cm 정도로 책 판형이 커서 그림을 온몸으로 만끽하기 좋아요. 귀엽게도 책 뒤표지에 있는 바코드도 물고기 모양이니 실물을 마주하면 한 번 찾아보세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8월 7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8/07/2023080700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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